“그러는 당신은 정인이 부모와 얼마나 다른가?”

더이상 사랑의 매에 '사랑'은 없다.

by 김형준

“어떻게 아이에게 그렇게 악마 같은 짓을 할 수가 있지?” 하며 죽은 정인이를 추모하는 당신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는 당신은 정인이 부모와 얼마나 다른가?"

이렇게 얘기하면 “뭐라고?”하며 발끈할 당신에게 말한다. 진정하고 일단 제 얘기 좀 들어봐 주세요라고.


한국 정부가 1991년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19조에 따르면 "국가는 아동이 부모, 후견인, 기타 양육자의 양육받는 동안 모든 형태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보호를 해야 한다”라고 규정했고 UN 아동권리위원회는 1996년부터 아동에 대한 체벌을 학대로 보고 체벌금지를 권고해오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한국 정부가 단골로 개선 권고사항으로 지적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고고한 법적 정의를 따르지 않더라도 아동학대의 범위는 사실 넓다. 우리가 정인이를 통해 본 입에 담기 힘든 폭력부터, 우리가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맞았던 그 선생님의 매, 그리고 집에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맞고 자랐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까지. 그것이 모두 폭력이고 아동학대의 시작과 끝이라는 생각해본 적 있는가.


어떻게 사랑의 매가 아동학대냐고 되묻는 당신. 사실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모두 사랑의 매를 맞고 잘 자랐으니까. 지금은 밥벌이하며 잘 사니까.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그렇게 맞고 자랐으니까, 때로는 성적이 안 좋아서, 때로는 말을 안 듣는다고 맞은 그 폭력이 씨앗이 되어 지금 우리 세대에도 자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씨앗을 품은 아이들 중 몇몇은 자라서 학대를 사랑의 매로 정당화하며 지금도 그들의 집 어딘가에선 아이들을 때리고 있다는 것을.


정인이 부모의 학대와 우리의 사랑의 매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시작은 똑같을지 모른다. 체벌은 체벌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키운다. 체벌이 부모의 후회와 반성으로 바뀌지 않고 아무 감시 없이 커지면 그것이 폭력과 학대로 변하는 것이다. 사랑의 매도 학대도 사실은 ‘부모는 때릴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훈육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냐라고 묻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긍정적인 훈육법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의 훈육법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사랑의 매와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던가? 인정? 허나 그런 부정적인 훈육과 폭력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칠 때 바로 들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아무리 이성적인 부모라고 해도 그것이 반복될 때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곤 한다. 그 순간 우리는 아이를 따로 불러 왜 그러면 안 되는 건지 설명하고 서로 간의 합의로 룰을 만들고 그걸 또 어겼을 시에는 어떤 벌칙이 있을 것인지 설명하는 긍정적인 훈육방법보다 소리 지르고 엉덩이를 때리는 게 더 익숙한 당신. 정신 차려야 한다. 미안하지만 그게 체벌이고 폭력의 시작이다.


그들은 악마 같은 부모였다. 법적 판단을 떠나 천벌을 받아야 함에 마땅하다. 허나 우리가 남에게 돌을 던지기 이전에 우리 주변에 폭력의 씨앗, 학대의 씨앗들을 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둘러봐야 한다. 사랑의 매는 부모의 권리라며 휘두르다 보면 그게 폭력이 되고, 그게 지속되면 학대가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 학대와 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안타깝지만 폭력의 문제는 쉽고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이해한다. 나도 너무나 분하다. 당장 돌을 들어 던지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을 바꾸어 처벌을 강화하자고 한다. 법을 바꾸어 경찰이, 사회복지사가 더 면밀하게 조사할 수 있게 하고 과잉하게라도 대응하자고 한다. 안타깝지만 법을 바꾸는 것은 1/3 정도만 효과만 있을게다. 그럼 나머지 2/3는 뭐냐고 묻는 당신. 성질 급한 거 보니 한국사람 맞구나. 아직 2/3가 더 남았다. 1/3은 아동복지 서비스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사 분들이 학대 의심 케이스를 발견해도 데리고 와서 안전하게 보호할 공간, 상담사 수와 역량, 미리 예방하는 카운슬링, 아이들과 부모의 재교육 등등할 일이 너무 많다. 예산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다. 쓸데없는 보도블록 교체 예산 아껴서 복지예산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복지 예산 늘어나면 사회주의라고 다짜고짜 욕하는 당신들에게 말한다. 안타깝지만 no budget, no work다. 남의 집 담벼락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옆집 사람은 간섭할 수 없지만, 정부는 사회복지사를 통해 경찰을 통해 할 수 있다. 정부 욕만 하지 말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게 예산을 주고 감시하는 게 우리의 역할일 게다. 비난만 하며 보내기엔 매년 40명의 넘는 아이들이 아동학대로 사망하고 있다.


마지막 1/3은 사회적 관습과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건 당신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이 아동학대를 걱정하고 없애고 싶듯이 우리 동네가, 학교가, 직장이, 사회가 폭력에 대해 같이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 내 자식인데 매 몇 대 때리고 윽박지르는 게 뭐 어때서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몰아내야 한다. 아이들이 공부 안 한다고 매부터 드는 친구 부모에게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미쳤어? 라며 반문을 하자. 너 맞을래? 라고 겁주는 부모님들에게 따가운 눈빛을 쏴주자.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든 미디어에서 본인들이 가진 권리를 배우고 소리 내도록 도와주자. 아이들이 꼰대 주의보를 울려야 한다. 그러는 어른들을 머쓱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자주 지속적으로 머쓱해지면 꼰대도 인식이 개선이 되고 행동을 조심하게 되어있다. 주변을 둘러보아라 꼰대들이 얼마나 꼰대 소리를 안 들으려고 노력하는 지를. 그들은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는 변한다.


물론 알고 있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애 둘 아빠인 나도 아이들에게 때로 소리 지르고 후회를 한다. 그러나 한 번에 하나씩 바꾸자. 내가 한 짓에 후회하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이 우리들의 말을 한 번에 안 들었던 것처럼. 어른이 된 우리도 한번 후회하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몇 번 하면서 후회하면 언젠가는 바뀌게 되어있다. 지금 혹시 아이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의 매가 잘못된 걸 수도 있겠다고 질문하고 있다면 그것도 좋은 시작일 게다. 아니면 네이버로 긍정적인 훈육법을 검색해봐라. 그것도 귀찮으면 유튜브에서 오은영 박사님을 영접해봐라. 가정에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긍정적인 훈육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인정하자. 더 이상 사랑의 매에 ‘사랑’은 없다. 그것을 사랑이라 우겨도 그것은 올바른 사랑이 아니다. 데이트 폭력을 하는 남성들도 대부분 사랑해서 그랬다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그들을 구속시키라고 하지 않는가. 폭력은 폭력이니까. 성인이 성인을 때리는 건 구속하고. 성인이 아이들을. 가족이란 이유로 때리는 건 괜찮다는 것. 뭔가 앞뒤가 맞지 않지 않은가? 이제 그 ‘사랑’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그리고 같이 배우자. 때리지 말고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그것이 지금의 분노가 변화로 바뀔 수 있는 좋은 시작이다.


정인이가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고 편하게 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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