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 본부 근무기

더 늦기 전에 정리해보는 본부 파견기

by 김형준

1.

전 세계 190개 넘는 국가에 사무소를 가진 유니세프. 본부에 앉아서 어느 국가가 어떤 혁신들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보고서를 키워드 검색으로 관심 주제를 찾아서 보거나 네트워크를 통해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을 한다더라 건너 들어서 아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대부분은 이미 유명한 큰 나라들 중심으로 케이스 스터디들이 수집되고 좋은 예로 다른 국가들에 유통(?)되는 것이 현실이다.


2.

가뜩이나 조용한 아태지역에서 그것도 작고, 심지어 중진국 꼭대기에 있는 말레이시아를 본부에서 관심을 가질 확률은 참으로 낮은 것이 현실. 그렇다고 조용히만은 있을 수 없는 일. 게다가 유니세프의 미래는 대부분 국가들이 중진국으로 옮겨가는 것이며 디지털 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 중산층이 늘어나서 국가의 기본 엔진들이 작동하는 것을 꿈꾼다. 누군가의 미래의 업무 영역과 환경을 나는 지금 중진국 끝자락에 서 있는 이곳에서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들이 나라 경제가 성장하고 정보 인프라가 개선되면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저개발국 혹은 중진국 초반에 있는 국가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의무도 있다(고 믿는다).


3.

이런 나만의 개똥철학을 가지고 말레이시아에서 발행하는 보고서나 케이스 스터디들이 모일 때 본부나 지역사무소 동료들에게 주기적으로 안부도 물을 겸 돌리곤 했다. 사실 이것은 어찌 보면 나의 개인적 커리어 관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유니세프가 대부분 관심을 가지는 저개발국 이후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 중진국에 있는 나의 울부짖음과도 같았다.


4.

그 노력의 결과일까. 본부 청소년개발참여팀 (Adolescent Development and Participation) 매니저에게 연락이 와서 나에게 3개월 정도 파견 근무 (stretch assignment)를 할 수 있냐는 오퍼가 옴.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우리 팀이 진행하는 KitaConnect (영어로는 WeConnect)를 더 알고 싶고 다른 국가 사무소에게 좋은 프로젝트로 장려하고 싶다는 내용. 비록 시기가 시기인지라 온라인으로 3개월간 뉴욕 본부를 위해 일하는 근무조건이었다. 맞벌이 부부로 양육의 부담을 저버리고 뉴욕으로 도망(?) 갈 수 없었기에 적합한 딜이었다.


5.

내가 맡은 일은 유니세프 내에 청소년 참여 (adolescent participation)을 제대로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해내는 국가들을 인터뷰하고, 유엔 밖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해서 어떻게 국가사무소들이 오프라인에서 주로 구현하던 인터 액티브한 청소년 참여를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할 것인가를 매뉴얼화시키는 일이었다. 그걸 가이드라인으로 만들고 글로벌 웨비나를 통해 공유하는 간단해 보이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하는 다분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6.

코로나 이전 유니세프의 가장 큰 장점은 직접 필드에서, 프로그램 참여자인 청소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듣고,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그들의 참여를 만들어내는 촉매제 같은 역할이었다. 저개발국 환경에서 흔히 말하는 큰 나무 밑 그늘에 앉아서 청소년들이 자기들의 이슈를 얘기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정리해서 정책 입안자들이나 커뮤니티 리더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오프라인 베이스 참여를 말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는 그런 모임들도 제한이 되고, 모든 국가들이 대면 프로그램들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시기 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디지털 환경에서의 프로그램 운영은 이제 앞으로 하나의 중요한 모델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7.

유니세프 내에서 디지털 환경에서 청소년들과 의미 있는 교류(meaningful engagement)를 한다고 알려진 8개 사무소를 뽑아 인터뷰를 하고, 하버드와 웨스턴 시드니 대학에서 청소년들의 디지털 행동과 참여를 연구하는 교수님, 그리고 UNDP에서 청소년 디지털 참여 담당 직원까지 몇 번을 거쳐 의견을 듣고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것과 나의 말레이시아 KitaConnect의 경험을 모델화해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8.

유니세프의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처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이 없는 현장 사무소 근무자에게 접근성이 높으려면 첫 번째는 비주얼 베이스, 두 번째는 단계별 안내 (step by step guidance), 세 번째는 적용 가능한 템플릿 예시가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과감히 캔바 (Canva)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캔바를 우리 팀 GenZ가 알려주고 우와하던게 몇 달 전이란 것은 말하지 못했다. 딱 보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캔바를 잘 모른 상황에서 공부하며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왜냐하면 그게 아마도 엔드유저인 국가사무소 청소년 프로그램 담당자들에게 더 보기 쉬울 것 같아서. 본부에서 만들어오는 고퀄의 100장짜리 가이드라인은 고맙지만 세세히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9.

삼개월간 뉴욕시간과 맞추려 자정을 넘나들며 일하는 시간이 계속되었고, 전 세계에 있는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최종본이 완성되었다. 그 완성본을 가지고 유니세프 국가 사무소중 브라질, 코소보, 말레이시아를 뽑아서 케이스 스터디도 발표하고 같이 논의하는 글로벌 웨비나도 기획해서 2차례 진행했다. 3개월이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엄청 빠르게 지나갔다.


10.

온라인으로 떨어져서 일했지만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도 서로 알게 되고 합도 맞추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본부에서 일했지만 역설적으로 국가사무소가 유니세프에서 왜 메인인지, 왜 국가사무소에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인지 더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가진 팀, 예산, 사무실 내 위치들이 새삼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불평불만 그만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값진 경험이었다.


11.

가이드라인 중 몇 장만 캡처해서 공유합니다. 전체 가이드라인은 내부 문서라 혹시나 공유하면 문제될까봐 (소심하게) 이렇게라도 공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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