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가 쌓이면 기회는 온다. 존버 하자.
1.
박사를 지원(만)했다고 알린 지 1달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인생에서 복리의 마법을 희미하게나 발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커리어가 쌓이면, 시간 투자가 쌓이면, 임계점을 넘어 끓는 100도가 된다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인생의 비밀을 말이다.
2.
일단 하버드 1차 면접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정답이 있는 인터뷰 문제들이 아니라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질문들이었다. 나에게 왜 지금이냐고. 그냥 유엔에서 일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굳이 하버드에 지금 오고 싶어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래서 난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다고. 올해 떨어지면 내년에는 아마 안 지원할 것 같다고. 올해 꼭 붙여달라고 했다. 이외에도 롤모델이 누구인지, 왜 교수가 되는 박사 트랙이 아닌 리더십 트랙인 Doctor of Public Health (DrPH) 프로그램을 지원하는지도 물어봤다. 하루 이틀 생각하고 재본 문제가 아니기에 생각을 전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3.
그렇게 합격하고 2차 면접으로 전진. 2차 면접은 하버드 보건대 행동과학 쪽 시니어 교수님과의 1:1 면접이었다. 본인이 진짜 궁금한 게 있다며 나의 서류를 보니까 교수형 박사를 지원해도 될 거 같은데 왜 리더십 트랙을 지원했냐고 물었다. 내가 유엔 실무자로 10년 가까이 일하며 리서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언젠가 박사 갈 거 같은 느낌에) 교수님들과 저널에 투고도 하고 내 포트폴리오에서 리서치의 불씨를 끄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필드에 있는 실무자가 일하기도 바쁜데 리서치를 디자인하고, 결과를 다듬어서 저널에 투고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 (선한 의도를 넘어서는 프로의 마음)이기도 했고. 그렇게 그 교수님을 설득(?)하며 내가 가지고 갈 경험과 네트워크가 있으니 뽑아달라고 티 나지 않게 구애를 했다.
4.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사실 여기서 떨어진다고 해도 얻은 게 많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신감 같은 게 생겼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지난 10년인데 시간이 쌓이니 커리어의 무게가 올라가고 내 커리어에 무늬 같은 게 생겼다. 상점에 가져다 놓으면 제법 그럴듯한 도자기 같은 느낌이랄까. 3개 대륙의 3개국을 옮겨 다니며 쌓은 포트폴리오는 저개발국> 중진국> 이제는 선진국 문턱에 있는 말레이시아까지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좋은 기회로 일하게 된 인도사무소와 본부 파견 근무도 큰 역할을 했다.
5.
하버드 면접이 진행되니 "아 내가 전혀 관련이 없는 곳에 지원한 건 아니구나" 생각이 들 즈음 조지 워싱턴에서도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조지 워싱턴은 다행히 한 번에 2명의 교수와 함께 면접을 보는 형태였고, 이제는 나를 보여주는 기회기도 하지만 내가 그 학교의 프로그램에 관해 물어보고 재어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존스홉킨스는 면접이 없다고 하니 3월까지 최종 결과들이 나오길 기다리면 될 것 같다. 이젠 진짜 다 끝났다. 다 보여줬고, 내가 핏이 아니라면 알려주세요. 마음 정리할게요. 그래도 붙여주시길 더 바라지요. ㅜㅜ 아 떨려.
6.
뿐만 아니다. 말레이시아에서 4년이 거의 다 되어가기에 작년부터 틈틈이 새로운 잡을 지원하기 시작했었다. 작년 말에 지원한 WHO에 내가 하는 분야의 자리가 아태지역에 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져본 지원서. 다른 기구라 외부인이기도 하고 (물론 WHO랑 맨날 같이 일하지만), 승진 자리라 경쟁이 될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연락이 와서 필기를 보자고 하네. 오랜만에 3시간 초집중 모드로 필기를 마쳤다. 필기를 보니 합격했다고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캐감격. 근데 하필이면 휴가로 섬에 놀러 온 날에 면접이 잡혔지만, 그래도 호텔방에서 부랴부랴 면접까지 완료. WHO에서 본격적으로 보건 분야에서 행동변화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그에 맞추어 자리들이 아태지역에 열리기 시작하는 찰나 운이 좋게 지원할 기회를 잡았다. 결과는? 최소 한 달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7.
휴가 중인데. 배를 타고 섬을 돌아다니는데 또 하나의 연락이 왔다. 유니세프 xx 지역사무소의 내가 하는 업무인 Social Behavior Change Program에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자리가 나왔었다. 인생 어찌 될지 모르니 지원서를 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연락이 와서 필기를 보자고. 다른 시험들보다 짧은 1시간에 4문제에 대한 답을 적어 보내고 하루가 지나고 5분짜리 대답 영상 하나를 녹화해서 보내는 특이한 시험이었다. xx지역사무소는 너무 좋은 국가에 있고,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좋은 근무지라 면접에 가도 나보다 더 경력이 많은 분들이 될 것 같지만 숏리스트 된 것에 일단 감사.
8.
복리의 마법으로 돌아가 보자. 우연처럼 몰려드는 기회들. 예전엔 그렇게 던져도 숏리스트 되지 않던 잡들이 이제는 더 높은 직급인데도 던지니 숏리스트 (100명이 지원하면 6-8명 숏리스트 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대부분 자리가 100명이 넘게 지원한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가 되는 상황. 나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경험이 쌓이고 분야 전문성이 되고, 그게 10년을 채우니 한 단계 높아진 프로가 된 듯한 착각 혹은 진실을 조우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기회들과 그 기회들에서 당당하게 나를 드러내는 경험들을 하면서 성장의 단맛을 느낀다.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닌. 아주 오래 숙성해서 깊어진 육수나 장맛이랄까.
9.
예전에는 언제나 난 저렇게 되나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아직 낮은 레벨에서 그런 시간+그릿+집중이 쌓이니 다음 판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끝판왕까지 가면 되는 거구나. 이번판을 내가 깰 수 있긴 하구나. 레벨이 올라가고 있구나. 이렇게 쭉 가면 끝판까지 갈 수 있겠다는 확신. 지난 10년의 시간을 복리처럼 부어서 만들어진 약간의 결과물들을 보며 기록하고 마음에 새기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0.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장기투자를 원칙으로 세우고 월급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미국 ETF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확 뜨는 종목 (e.g. 쿠팡, 그랩, 아고라 (클하관련주))에 물려 들어가서 자이로드롭을 경험했는데, 결국 변화하는 장에서 굵직하지만 수익을 만들어내는 건 화려하지는 않아도 복리처럼 매달 적금처럼 부었던 ETF였다. 오래 쌓이니 3프로만 올라도 수익금액이 커지고 지금은 내 주식 포트폴리오를 잡아주는 종목이 되었다.
11.
커리어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니다 이미 누군가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걸 듣고 새길 내공이 없던 것이고. 집중하고 꾸준하게 시간을 가지고 투자하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경험도 하고, 더 좋은 기회들, 처음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기회들이 열린다고. 당장은 99도라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지만, 100도가 되는 순간 물이 끓기 시작할 거라는 걸. 너무나 상투적이고 투박한 조언이지만. 그 길이 맞다 싶으면 시간을 들여 존버 해보는 경험이 다음 판으로 가게 해주지 않을까?
12.
이렇게 글을 쭉 쓰고 보니 아직 붙은 것도 하나도 없으면서 뭔가 인생의 비밀을 발견한 거처럼 교만하게 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과정의 노력과 경험이 결과의 안정감보다 더 값지다 생각한다. 실패해도 존버 하는 투자. 그 인생 투자의 맛을 함께 느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