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를 떠나는 지금
말레이시아를 떠나기 일주일 전입니다. 같은 곳을 다녀도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드는 요즘입니다.
24 박스
4년 전 가나를 떠날 때 12박스의 짐을 말레이시아로 보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4년을 보낸 후 얼마 전 24박스의 짐을 미국 보스턴으로 보냈습니다. 4년 사이에 짐이 정확히 2배로 늘었습니다. 애들이 2배로 큰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겠지요.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24박스로 맞추기 위해 많이 팔고 많이 버렸습니다.
150개
150개가 넘는 물품을 팔았습니다. 자동차를 시작으로, 가구, 가전제품, 애들 한글 책까지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난 10년 해외 생활에 중고를 사고 파는데 프로가 되었음에도 구글닥에 살림을 찍어서 설명을 붙이고 가격을 정해서 구매자와 협상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끼던 물건들이 집을 하나둘씩 떠나가며 아쉬운 마음이 들고, 제 가격을 못 받고 넘기는 상황 속에 속이 쓰리고, 저 이케아 가구들 여기서는 조립을 돈 주고 맡겼는데 미국에선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조립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국적불문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 갔고, 이제는 집이 텅텅 비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국 가서 다시 열심히 사서 채워 넣어야겠죠. 사고팔고를 반복하며 영원한 내 물건은 없다는 생각을 몸으로 배웁니다.
2개월
이 모든 변화들이 하버드 합격소식을 듣고 결정을 하고 2개월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동안 회사를 그만두었고, 이사업체를 통해 이삿짐을 미국으로 보냈고, 미국에 살 집을 계약했고, 차량을 주문해서 디파짓을 걸어놓았고, 아이들의 전학도 준비를 했습니다. 와이프와 매일 밤 애들을 재우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듯 익숙한 구글닥을 꺼내 기록하며 진행해온 메가 프로젝트였습니다. 2년이 지난 것 같은 노동력을 투입했는데 2개월 안에 그 많은 걸 해내는 걸 돌이켜보며 이제는 우리가 프로구나 생각했습니다. 해외 이주 프로. 이제는 조금 지치기는 합니다. 학생으로 가는 게 아니었으면 뭔가 덜 아끼고 더 편하게 했을 텐데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3년
4년 간의 말레이시아 생활 중 3년을 교회 청소년부 선생님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에 관심이 없던 저였습니다. 10년 전 보스턴에서 석사를 할 때 저희 팀을 섬겨주시던 간사님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하버드, MIT 같은 곳에서 포닥을 하거나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40대 분들이었습니다. 본인의 생활도 바쁠 텐데 받는 것 없이 유학생활에 지친 청년들을 위해 섬겨주시고 함께 해주셨던 그분들의 노고가 마음의 빚으로 남았습니다. 그 이후 10년 간 어느 국가를 가든 교회를 통해 청소년부 교사를 하거나 다른 봉사들을 해왔습니다.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 힘든 그 시기에 같이 있어주고 농담을 나누는 그 정도의 역할. 3년을 매주 빠지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제가 그랬듯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헌신에 감사하고 그것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9년
유니세프에서 9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 직장에서 9년을 있다 보니 이 조직의 미션이 제 미션이 되고, 이 조직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저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유니세프 색깔을 보면 아이들도 알아보고 아이들과 고른 핸드폰 케이스도 고르고 보니 유니세프 색깔이더군요. 이제는 내려놓고 보내줘야 할 시간입니다. 9년간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큰 조직이기에 쉽지는 않지만 일주일 후면 유엔 여권을 내려놓고 제 마음속의 유니세프를 보내주려고 합니다.
10년
돌아보면 매 10년마다 인생의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10대의 마지막에 재수를 했고, 20대의 마지막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플래쳐로 석사를 떠났습니다. (만) 30대를 마무리하고 40대가 되는 지금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고 박사를 떠납니다. 30대가 시작될 때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10년 후 저도 어디에 있을지 아직은 그려지지 않습니다. 변화의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실 (감당할만한) 시련과 경험 속에서 감사함을 찾는 여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1달
이번 주에 한국에 귀국합니다. 한 달간 가족과 시간도 보내고, 강의도 몇 개 있고, 비자도 받아서 출국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출국하면 또 언제 들어올까요. 매번 이런 생각을 하면서 떠나지만 또 돌아오게 되는 게 집인 것 같습니다. 마음만큼 다 못 만나는 게 현실이지만 꼭 만나지 못해도 서로를 응원하고 연락하면서 지내요!
자, 이제 마지막 1주일.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인사 잘 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 씨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