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vi CEO의 방한을 준비하고 끝내고 나니 배운 것.
한 달을 넘게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한 Gavi 대표의 방한 일정. 누구를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고, 어떤 발표를 해야 하고, 어떤 언론과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까지 영어로 한글로 양쪽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여름을 홀딱 보냈다.
파트너십 업무를 제대로 경험하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함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세에 따라 마지막까지 바뀌면서 마음을 졸였던 용산 대통령실과 외교부 미팅까지. 고위급 회담에 준비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기도로 준비했던 시간.
대표님 도착 첫날 저녁, 비행기가 연착되어 공항서 바로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 애초에는 정부 고위급 분들을 모셔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저녁 자리를 마련했는데 하필 지금 국회가 예산 심의 주간이라 다들 국회에 들어가셔서 막판에 멤버분들을 부랴부랴 섭외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더 다양한 섹터의 분들을 모실 수 있었고, 이대 김은미 총장님, 삼성전자 VP이신 정인희 선배님, IVI 사무총장 제롬킴, 라이트재단 김한이 대표님, 게이츠 재단 한국 담당 분들을 모셔서 화기애애하게 선방.
국회의원님들 미팅은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보좌관님들과 한 달 넘게 소통하며 만들어냈는데. 보좌관님이 이렇게 다른 정당분들 한 번에 다 모시는 게 흔치 않다며 축하의 메시지를 던졌다. 고위급 회담인 만큼 미리 혼자 가비 소개피피티를 한글로 다 번역해서 한글로 피피티에 발표를 녹음해서 미리 듣고 오실 수 있게 만들었다. 함께 앉은 시간에는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마련한 준비 과정이었다.
중간중간에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언론사들과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조중동연합까지 모든 언론사와 인터뷰를 성사해서 여기저기 Gavi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효과도 누렸다.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몇 번 건너다보니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었고 다행히도 가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가장 메인이벤트는 글로벌바이오컨퍼런스 기조연설이었다. 올해 초 기조연설 초청이 대표님 실에 왔을 때만 해도 진짜 대표님을 한국으로 모시고 올 줄 몰랐지만 꾸준히 준비하니 이런 날이 왔다. 가비 대표로는 7년 만에 방문이고 신임 대표로는 아시아 첫 방문이 한국이었다. 기조연설 피피티를 준비하며 나도 언젠가는 이런 자리에서 발표 자료 준비하는 걸 넘어 직접 발표할 날이 있으려나 하는 단꿈을 꾸었고, 발표는 그렇게 잘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Gavi의 소관부처인 외교부 면담을 마치고 게이츠 재단과 오픈필란트로피가 공동 주최한 글로벌 보건 세미나에 가셔서 마지막으로 기조연설을 하시고 3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공항까지 모셔다드리며 제네바에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남기고 중국으로 내 보스와 출국하셨다. 3일을 위해 혼자 기획하고 준비하며 내 밑에 후임이 1명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니세프에서 팀을 운영하다 가비에서는 거의 혼자 선임 매니저로 일하다 보니 팀을 리드하는 게 문득 그리웠다.
매번 처음 할 때는 이게 될까 상상만 하던 일들이 시간이 쌓여서 준비가 되면 대부분 일어난다. 물론 그 과정이 너무 불안하고 두렵고 확신이 들지 않아서 잠을 못 이루는 시간들이 있지만, 몇 번 그렇게 일이 되는 것을 보다 보면 이번에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
하버드에서 2년 전 수업 시간 케이스스터디로 지금의 Gavi CEO를 만났었다. 파키스탄의 여성 최초의 심장전문의로 런던에서 박사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NGO를 열어서 정부 보건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정부로 들어가 보건부 장관과 상원 의원을 역임했다. 지금 WHO 사무총장인 Dr Tedro와 사무총장 최종 경쟁에도 올라갔던. BBC가 뽑은 여성 리더 100인. 그런 사람을 옆에서 3일 내내 보좌하며 리더의 자세와 온도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겸손과 경청, 그리고 좋은 질문들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무엇보다 3일 내내 함께해 주신 운전기사님의 선물까지도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은 나도 꼭 가져가고 싶은 리더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보스턴으로 돌아가 조용히 논문을 쓰면서 본분을 다할 시간. (이라고 하지만 일주일 후에 제네바 출장이 있다는. 와이프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