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꼴 좋다!
소유욕의 들꽃에 포박당한 제비 자아를 음흉하게 흘겨보면서 덕후 자아는 마우스를 딸깍딸깍 움직였다.
제비 자아의 발목을 붙들어놨으니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못내 후환이 두려웠기에 차마 폭주할 순 없었다. 더구나 두 자아가 치고박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라는 거대한 감시자가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두 자아의 주인이자 중재자인 인간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덕후 자아는 알 길이 없었다.
쿵쿵쿵. 나는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덕후 자아의 난을 관조했다. 정수리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 이럴까? 오래도록 끊은 초콜릿을 먹은 기분이 이럴까? 오랜만에 맛본 소비의 맛이 짜릿했다.
덕후 자아는 제비 자아와 ‘나’의 눈치를 살피며 그동안 고르고 골라 두었던 굿즈 목록을 쭉 훑었다. 그러고는 결심했다는 듯 어떤 항목을 클릭하더니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네모난 무언가가 빔 프로젝터 화면처럼 시야를 점령했다.
네모난 무언가는 일명 ‘샵사’라는 물건이었다. 이것은 연예인의 공식 굿즈 숍(샵)에서 판매하는 손바닥 만한 실물 사진인데, 한국에서는 보통 “샵사”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듯했다. 요즘 아이들 굿즈의 대표격인 명함 크기만 한 ‘포카(포토카드)’와는 좀 다른 느낌이랄까? 네 모서리에 흰 테두리가 있어서 마치 엽서처럼 생긴 인화 사진. 그 디자인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뭉클했다.
‘아, 이런 건 정말 아직도 그대로구나.'
샵사의 크기와 디자인은 2X년 전 오빠들을 덕질했던 나에게 무척 익숙한 형태였다. 내가 구 오빠들 덕질하던 시절, ‘문방구’에 가면 문방구의 벽면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채우고 있던 ‘엽서 사진’들과 놀랍도록 흡사했기 때문이다.
어쩐지 몽글몽글한 기분에 휩싸인 채 넷상에 떠도는 여러 샵사를 구경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샵사가 한 장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왕자님 같은 푸른빛 의상을 입고, 어깨에 장식된 수술을 손바닥으로 받치듯 얹은 채 살짝 미소 지은 샵사였다.
‘아, 귀여워!’
‘어쩜 저렇게 사랑스럽지?’
‘아니 어떻게 사람이 반짝말랑콩떡아기왕자……!’
감탄해 마지않던 그때였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어떤 덕심의 구간에서 파지직 불꽃이 튀었다.
갖고 싶다, 저 사진 딱 한 장만!
이미 잡지를 주문하며 소비의 맛을 봐 버려서일까? ‘소비’라는 행위에 대한 장벽이 주금 누그러진 나는 덕후 자아가 이끄는 대로 샵사 구입 루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샵사는 일반 출판사에서 내는 잡지와 달리 공식 굿즈샵에서만 판매하는 물건으로 판매 시기가 지나 매대에서 내려간 굿즈는 중고 거래로만 구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구입 방법을 조사하면서 얻게 된 정보에 따르면, 내가 가지고 싶은 그 ‘샵사’는 이미 오래전에 판매가 종료된 과거 매물이었다.
나는 허망한 심경을 드러내듯 코끝으로 미끄러져 내려온 안경을 슥 치켜올렸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내가 유일하게 자주 접속하는 ‘물건 소비’ 관련 앱을 열었다. 중고거래 앱 “당근”을.
** 오늘의 덕질 일본어 **
샵사 公式写真(げんしょ 겐쇼 코-시키샤신), 生写真(なまじゃしん 나마쟈신)
포토카드 トレカ(토레카), トレーディングカード(토레-딩구카-도)
공식 굿즈 公式グッズ(こうしきグッズ 코-시키굿즈)
어쩜 저렇게 사랑스럽지?
何でそんなにいいの?
(난데손나니카와이-노?)
최애가 너무 소중해!
推しが尊い!
(오시가토-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