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란 Aug 27. 2024

운명처럼 나타난 당근 판매자

설마 있겠어?


‘당근’ 앱을 터치하면서도 사실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이 동네는 매물이 많은 지역도 아니거니와 케이팝도 아닌 제이팝 아이돌의 철 지난 굿즈가 과연 있을까? 더구나 당근으로는 오직 ‘도보 직거래’만 취급하는 인간이 여기서 뭘 건지겠는가, 생각하며 최애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라, 어라라? 

나는 떡하니 나타난 검색 결과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있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샵사’가, 그것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아, 이건 사야 해!


이것이 운명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운명이란 말인가! 당장 메시지를 보냈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즉각 답장이 왔다. 순조롭게 당일 거래 약속을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거래 장소로 나갔다.


거래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상대를 기다리길 대략 5분. 아무리 많이 잡아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솔직히 한눈에는 영락없이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등장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소녀는 날 발견하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래, 놀랄 만하지. 나도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럴 줄은 몰랐어. 아줌마 덕질 잘하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순 없는 생각을 하면서 현금과 물건을 교환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참을 수가 없어서, 놀랍도록 느리게 걸으며 소녀가 준 꾸러미를 풀었다. 엽서 크기의 사진 한 장이 든 것치고는 도톰한 꾸러미였다.


꾸러미 안에는 내가 구매한 샵사 외에도 소녀가 호의로 담았을 덤이 담겨 있었다. 직접 제작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팬이 제작한 것을 샀는지는 몰라도 최애의 사진을 편집해서 만든 깜찍한 스티커였다.


윽, 귀여워! 행복해!


귀여운 것을 본 순간 드는 즉각스러운 만족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만족감과 함께 반사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귀엽기는 하지만 스티커는 딱히 필요없는데.’

‘아니, 근데 그렇게 따지면 샵사는 뭐 필요해서 샀나?’


불현듯 20여 년 전에 덕질했던 구 오빠들의 굿즈가 떠올랐다. 그 시절 열심히 사 모았던 굿즈며 앨범이 다 어디로 갔더라? 어디로 가긴, 전부 내 손으로 처분했다.


내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았던 물건을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리하면서 가장 크게 결심했던 바는 ‘물건을 새로 들이지 말자’였다. 새 물건을 집에 들이려거든 ‘꼭 필요한 물건’만 ‘충분히 고민’해서 들이자,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 정 불편하면 그때 다시 고민하자.


그렇게 9년여를 살았더니 이제 어지간한 물건은 내 물욕을 자극하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솔직히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란 종류에 상관없이 그저 쓰레기로 보였다. 사은품도 싫고, 덤도 싫었다. 내가 숙고해서 집에 들이기로 결정한 것만 들이고 싶었다. 이런 내가 무용하기 그지없는 스티커를 보고 귀엽다느니 행복하다느니 하며 한껏 들뜨다니! 심지어는 마음 한 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최애의 존안이 담긴 스티커를 받았는데 좀 신날 수도 있지!’


입덕으로 발아한 소유욕의 폭풍 한가운데서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실용적이지 않은 물건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이성과 굿즈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무엇보다 ‘갖고 싶다’라는 욕망을 비호하는 자아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는 데 큰 당혹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9년 넘도록 지켜온 제비 라이프의 근간이 이토록 쉽게 흔들릴 수가 있나?’




** 오늘의 덕질 일본어 **


스티커 ステッカー(스텟카-)

영수증 領収書(りょうしゅうしょ 료-슈-쇼)

덤 お負け(おまけ 오마케)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해요.

同じ時代を生きることができて幸せです。

(오나지지다이오 이키루고토가데키테 시아와세데스.)


데뷔해 줘서 고마워!

デビューしてくれてありがどう!

(데뷰-시테쿠레테 아리가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