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핸드폰 없이 한 달을 보내면 무슨 일이 생길까.
핸드폰 없는 첫날, 공중전화 발견!
2년 반 동안 쓰던 아이폰을 두 번 떨어뜨렸다. 액정에 금이 쩍쩍 갈라지더니 영영 전원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뒤로 3주 넘도록 핸드폰을 안 쓰고 있다. 회사 동료들은 이참에 최신 폰으로 바꾸라고 했다. “노예 약정을 맺어버려요!” “출근할 힘은 바로 빚이에요!”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휴대폰이 없던 날들을 기억한다. 내 하루는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하며 풍요로웠는지를. 한발뛰기를 하다가 메로나를 먹고 낮잠을 자도 해가 안 떨어지던 날들. 그땐 핸드폰으로 24시간 연결되진 못했지만, 현관문을 열면 동네 사람들과 연결돼 있었다. 그런 날들이 그리웠다.
핸드폰 없이 보낸 첫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신사역 5번 출구에서 7시에 만나. 전화가 없어. 도착하면 공중전화로 전화할게.” 나는 제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 그리고 신사역에 공중전화 2대가 있음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핸드폰 없는 첫 주, 심심해서 달을 봤다
“언제 사?” 핸드폰 없이 보낸 첫 7일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 그다음으로 많이 들은 말은 “뭐 살 거야?”였다. 그때마다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폰 레드가 나오기를 기다릴 거야.”라고 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마트폰은 사치품이잖아! 왜 세상 사람들은 모두 2년 할부 약정을 맺고 사치품을 사야 하는거야? 안 사면 책을 47권 살 수 있고 생블루베리 타르트를 23개쯤 먹을 수 있는데도!
‘문명을 왜 거부하느냐?’, ‘너만 왜 유별나게 구느냐?’는 질문은 사양하고 싶다. 전자기기에 관한 존재하지도 않는 트라우마를 캐묻지도 말아 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시간이 지독하게 느리게 흐르는 느낌을 그리워하는 사람. 누워서 핸드폰으로 연예 기사를 읽다가 자정을 넘기는 게 싫었다.
핸드폰이 없던 첫 7일은 ‘자유의 저녁’이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들춰보다가 창밖을 봤다. 밤이 깊어갈수록 달이 포물선으로 움직이는 걸 보다가 잠들었다. 나는 카우보이처럼 초승달에 밧줄을 매달아 별 사이를 날아다니는 유치한 꿈을 꿨다.
핸드폰 없는 둘째 주, 주변에서 불편해한다
“어디 계세요?” “연락이 안 돼요.”
올 게 오고 말았다. 핸드폰 없이 산 지 2주째. 주변에서 불편함이 속속 접수됐다. 특히 업무상 외부 취재가 잡힐 땐 정말 곤란했다. 우리 회사 사람도 고객도 내게 연락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핸드폰 언제 사실 거예요?”라는 말엔 이제 ‘네놈 똥고집 때문에 모두가 불편해졌어’라는 준엄한 꾸짖음이 담긴 듯했다.
하필 그날 외근 장소는 서울 코엑스였다. 공간은 넓고 사람은 많아서 만나야 할 이들이 안 보였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노트북을 켜고 공공 와이파이를 잡아 PC 카톡을 열어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저 멀리서 사진작가님과 후배가 보였다. 후배가 자기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선배 찾는 전화가 왔어요.” 핸드폰 없이 사는 건 쉬운데 직장생활은 잘 모르겠다. 스티브 잡스가 이 모습을 봤다면 뿌듯했으려나.
핸드폰 없는 셋째 주, 그렇게 시간 부자가 된다
핸드폰 없이 3주째. 주변에서도 조금씩 포기한 것 같다. “핸드폰 살 거지?”라는 질문은 “언젠간 사긴 살 거지?”로 바뀌었다. “회사 번호로 연락 주세요.”라는 말도 자연스러워졌다. 일상도 단순해졌다. 저녁에는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샐러드를 먹은 뒤에 집에 돌아와 책을 읽었다. 게다가 30~40분 동안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이건 기쁘면서도 슬픈 일이었다. 17살 때 나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다가 밤을 새운 적이 있었다. 어쩌면 <여자의 일생>보다도, 밤을 새울 만큼 집중한 나 자신에게 감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생기고는 그런 기억이 없다. 이번주에는 제프 다이어의 소설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를 읽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창밖에 뜬 보름달을 봤다.
핸드폰 없는 여행, 잊고 있던 신비로운 느낌
핸드폰 없이 3주 하고도 절반이 넘어갈 무렵. 친한 A와 나는 전라남도 보성과 장흥을 여행했다. 특히 장흥엔 우리 외할머니댁이 있다. 장흥의 자랑인 쫀득쫀득한 키조개와 꼬막 정식부터, 썰물 때면 반짝거리는 갯벌도 A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게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렌터카를 몰고 다니느라 바쁠 A를 위해 인터넷에서 맛집이라도 검색하는 게 응당 내 의무였다. 나는 또다시 쭈글쭈글하게 “핸드폰 좀 빌릴게...”라고 말한 뒤 맛집을 급히 찾았다.
그날 저녁엔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펜션을 빌렸다. 크래커에 치즈와 방울토마토를 올려 카나페를 만들어 먹고 망고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바닥에 벌러덩 누워 바닷소리를 들었다. 핸드폰이 없는 나는 정말로 할 일이 그것뿐이었다. “우리 엄마가 알려줬는데 여기 해변 이름은 ‘여다지’야.” ”문을 여닫다고 말할 때 그 여다지인가?” “그런가? 바닷소리가 부드럽네.” 그날 파도소리는 뭔가 좀 달랐어, 라고 말한들 믿어줄 사람은 없을 거다. 어쨌든 우린 여닫이 문처럼 부드러운 파도소리를 들었고, 논두렁에 사는 이름 모를 동물의 나긋나긋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날 밤 우리는 한 번도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우먼카인드」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