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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도 못 살 불편함

공돈 앞에서 나는 왜 안절부절못하는가.

by 노르키

얼마 전에 인기 맛집을 어렵게 예약했다. 방송에도 나온 유명한 셰프가 운영하는 중국 요릿집이었다. 시그니처 메뉴인 동파육을 먹어보고 싶었다. 중국의 문인 소동파가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동파육은 돼지고기를 간장과 생강, 설탕 등에 끓이고 촉촉해지도록 졸여 청경채와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바로 접시가 나왔다. 접시 테두리에 둥글게 깔린 데친 청경채 사이에 (아마도 삼겹살 부위로 보이는) 돼지고기 몇 점이 큼지막하게 놓여 있었다. 오기 전엔 ‘몇 점 안 되는데 누구 코에 붙이지?’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고기가 크고 두꺼워서 금방 배가 부를 것만 같았다. 식감이 부드럽고 맛도 담백해서 세 점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짠순이인 나는 오랜만의 외식을 온몸으로 즐겼고, 연태고량주도 작은 걸로 하나 시켰다.


남자 친구 말에 따르면, 다 먹고 밖에 나온 다음에 내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고 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그런 게 느껴졌어?” 그랬더니 남자 친구는 “응, 아주 잘 보였지.”라고 말했다. 내겐 영수증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고, 남자 친구에게는 그런 습관이 없다. 밖에 나와서 본 영수증에는 기분 좋게 마신 연태고량주 가격이 빠져 있었다. 않았다. 우리가 쓴 돈은 14만 원쯤이었고 빠진 돈은 1만 5000원 정도. 만약 이미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면 ‘에이, 다시 돌아가긴 좀 그래.’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었다. 만약에 1,500원이었다면 (고작 그 정도에 디그니티를 팔 순 없으니까) 당장 가져다줬을 테고, 15만 원이 빠져 있었다면 무서워서 곧바로 돌려줬을 것이다. 그런데 1만 5000원은 죄책감을 느끼기엔 애매한 돈이었고 달콤한 공돈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선 이런저런 상념이 일어났다. 14만 원을 썼는데 이 정도는 서비스로 봐도 된다거나, 식당이 나보다 더 부자야… 하는 그런 갈등이 머릿속을 바쁘게 오갔다.


그러나 영수증을 봤고 진실을 알아버렸다. 가게가 우리에게 서비스를 준 것도 아닌데 서비스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찝찝할 것 같았다. 그래, 1만 5000원에 양심을 팔진 말자. 아니야, 이건 양심 운운할 정도의 일도 아니라고. 그때 남자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가져다 주자. 뭐, 가게에선 모르겠지만 네 마음이 불편하면 안 되지.”


갈까 말까 망설이며 동네 한 바퀴를 빙빙 돌다가 가게에 다시 돌아가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점원은 놀라며 “뭐 드셨었죠?”라고 말했다. 계산이 덜 된 것 같다고 했더니 의아한 얼굴로 “얼마를 덜 내셨죠?”라고 했다. “1만 5000원이요.” 그랬더니 점원은 우리가 말한 대로 포스에 1만 5000원을 새로 입력했고, 우리는 다시 카드를 내밀었으며, 카톡에서 ‘띠리링’ 소리가 울리며 1만 5000원을 결제했다는 알림이 떴다. “점원이 빼먹은 모양이네요.”


“역시 가게는 몰랐네.” 뭔가 공돈(!)을 놓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조용히 뇌까렸다. 그때 남자 친구가 말했다. “잘한 거야. 이런 것을 불편해하는 마음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이야.” 맞다. 가게는 몰랐어도 나는 알았다. 나중에 1만 5000원이 15만 원이 되고, 150만 원이 되고, 1500만 원이 되면 그땐 정말로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게 될까 봐, 아예 뿌리부터 자르고 싶어서 그랬다. 그저 내 것이 아닌 것은 욕심내지 않는 마음을 계속해서 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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