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도 없는 것을 좋아하려고 애써야 할 때가 훨씬 비참했다.
"좋아하기까지 해야 하나요? 그냥 하면 안 돼요?"
월요일 저녁 책 읽기 줌 모임에서 어느 여성 분이 한 말이다. 그분은 암 치료를 받고 회복기를 보내는 중이다. 아프고 나니 주위 사람들이 무척 친절해져서 가끔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다들 제가 좋아하는 것 실컷 하면서 이기적으로 살래요. 아프기 전에도 그랬는데,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 하나요?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귀찮아요."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돈 주고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좋아한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명하는 것도, 스펙이나 일할 자격 요건이 되어버린 것 같다. 부담스럽게.
나도 인 노력형이었다. 좋아서 한 것도 있고, 엄청 좋아하진 않아도 싫진 않아서 그냥 했던 일도 있었다. 수능 공부, 동아리 음악회, 토론대회 준비... 신입사원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까지 글을 고쳤다. 연차가 쌓이고는 원치 않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땐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쉽지가 않았다. '좋아할 필요까진 없지. 그냥 하는 거야.' 그건 마음가짐이 오히려 내게 위안이 됐다. 돈을 벌기 위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관심도 없는 것을 좋아하려고 애써야 하는 때가 훨씬 비참했다.
좋은지 싫은지, 혹은 이것이 내 방향이 맞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스스로 채찍질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이대로 살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단 불안감에서였다. '더욱더 노력해야 해. 바쁘게 살아야 해. 움직여. 자투리 시간에 외국어 단어를 외우고, 스스로 더 나아질 점이 있는지 찾아봐.'
열심히 애쓰는 노력의 이면에는, 지금의 나로는 불충분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목표를 세워놓고 나를 채찍질할 때는, 내 본능과 기질이 자연스레 끌리는 쪽을 외면하게 된다. 그래야만 목표와 관련 있는 일관된 것들만 하게 되니까. 내 방향성이 명확하고 내가 원하는 게 맞다면, 그 아래 세부 사항들은 하기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방향성을 세우지도 못했는데, 이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저쪽에서 왜 전력을 투입하지 않느냐고 채근하면 할 말이 없다.
요즘 나는 하루 계획을 느슨하게 세워둔다. 해야 할 일들을 크게 몇 가지 잡아 다이어리에 적어놓는다. 책 읽기, 글 쓰기, 전화영어 준비, 친구에게 안부 묻기 등등. 그리고 책을 읽다가 내키면 글을 쓰고, 또 내키면 영어공부를 한다. 예전에는 30분 단위로 계획을 잡아놨다. 시험 준비를 한다면야 그 방법이 낫겠지만, 내게 훨씬 편한 방식은 요즘이다.
무언가를 좋아해야만 한다거나, 인생의 목표를 어서 하나로 설정하라고 스스로 채근하지 않으려 한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는지 지켜볼 시간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