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연의 '만남' 가사가 처음으로 제대로 들렸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남편과 연애 시절 장난처럼 불렀던 노사연의 '만남'. 오늘 저녁엔 처음으로 노랫말이 제대로 들렸다. '우리의 바램이었어'라는 가사가 처음으로 들린 것이다. 그 문장에 어렴풋이 공감하게 된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의 만남은 우연일까, 바람일까. 처음 사무실에서 신입사원 동기로 만났을 땐 운명이라는 거창한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그저 이 사람 곁에 있으면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졌다. 다른 사람보단 남편 옆자리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사무실 자리를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나는 이겼는데도 굳이 찬바람 드는 문가의 남편 옆자리에 앉았다. 처음엔 그저 동료였기 때문에 별다른 마음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이틀 지날수록 남편은 한 번 더 말 걸고 싶고, 과자 하나 더 주고 싶고, 퇴근하고도 눈웃음이 아른거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만약에 지난날 내가 걸어왔던 길에서, 무엇 하나라도 계획대로 됐다면 남편을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에 25살에 언론사 최종면접에 합격했더라면.
당시 나는 기자 지망생이었다. 학교 졸업 직후 유명한 신문사의 최종면접을 보고 있었다. 필기와 실무평가를 치르면서, 희한하게도 내 안에선 이런 마음이 떠돌았다. '합격하고 싶지 않아...' 권위적인 문화가 힘겨울 것 같았고, 즐겁지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취업하면 기뻐할 부모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돈을 벌고 싶었고, 이왕이면 누구나 아는 그럴듯한 회사에서 사회생활 첫발을 내딛고 싶었다. 그래서 우격다짐 전형을 치렀다. 하지만 나의 바람이 통했는지, 어쨌든 최종에서 낙방했다.
만약에 26살에 미국에 인턴으로 가게 됐다면... 하지만 그때 갑자기 집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다. 인턴 가기를 포기하고, 학교에서 조교로 일을 시작했다. 27살에 지원한 회사들에 합격했다면, 잡지사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남편을 만나지 못했겠지. 지금은 남편을 못 만났을 인생이나 아기를 만나지 못할 인생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당시에는 나름 고됐지만, 지금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그날들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그럴듯한 계획은 세워놓았지만, 사실 내 '바람'이랄 것은 없던 시절이었다. 그냥 '세상이 내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라 믿었던 것을 꾸역꾸역 했을 뿐이다.
지금 내 주변의 모든 것은 나의 바람이었던가? 노랫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남편도 몇 년 전에 '가시나무'의 가사가 제대로 들렸다고 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각자의 때가 있는 모양이다. 처음엔 그저 재미 삼아 따라 부르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다음에는 노랫말이 제대로 들리는 날이 온다. 그제야 나는 스스로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어감을 느끼고, 지난날을 뚫고 나서야 등에서 자란 날개 한 뼘을 머쓱하면서도 뿌듯하게 바라보게 된다.
오늘은 글쓰기 모임 회원들과 매일 글 쓴 지 100일째다.
여러 가지가 변했다. 나는 100일 동안 100편을 쓴 사람이 됐다. 메모하고 글쓰기가 습관이 됐다. 앞으로도 이렇게 꾸준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투고하고 책을 낼 수 있을 것 같고, 이렇게 계속 쇠털 같은 나날동안 글을 쓸 테니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미 내 마음에서 나는 글 쓰는 사람이요, 작가다. 함께 쓰고 있는 사람들도 이미 글 쓰는 사람이고 작가다. 나는 쓰는 재미와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용기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들리지 않다가 들리기 시작한 노랫말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게 된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잠깐 감동하고 말아 버렸을 순간, 그저 흘려보내고 잊어버렸을 순간이 이젠 글에 남아있다. 지난 100일은 백지가 아니다. 생생하게 내 안에 살아있다. 100일 전과 가장 달라진 점이다. 나는 100일만큼 더 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