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영어를 하다가 문득, 따뜻하고 강인한 그녀가 떠올랐다.
내게는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 거의 1년 5개월째 전화영어를 꾸준히 해온 사실이다! 출석률도 91%를 자랑한다. (이만하면 와우!) 보통은 회차마다 정해진 주제를 예습해 대화한다. 오늘은 예습을 하지 못해 프리토킹을 했다. 그래서 고른 대화 주제는 'Next Vacation(다음 휴가)'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어디를 여행하고 싶니?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나는 퍼뜩 일본 홋카이도가 떠올랐다.
I have a good memory of traveling to Japan.
(일본을 여행했던 좋은 기억이 있어요.)
Especially northern region of Japan, everyone enjoyes hot springs.
(특히 일본 북부 지역에선, 모두가 온천을 즐겨요.)
The hot springs are located outside.
(온천은 야외에 있어요.)
You can see exotic scenery and snow-covered forest.
(이국적인 풍경과 눈으로 덮인 숲을 볼 수 있어요.)
쭉 말하고 나니 선생님이 대답했다.
"신기하네요. 필리핀에서는 눈을 보기 어렵거든요. 저의 한국 학생들은 자주 일본 여행 경험을 들려줘요. 특별한 곳인가 봐요."
선생님의 말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선생님과 여행에 관해 얘기하면서 필리핀이 아니라 일본 얘기를 하고 있다니. 필리핀에 얼마나 멋진 여행지가 많은데! 그리고 문득 내 필리핀 친구 조이(Joy)씨가 떠올랐다. 그녀가 내게 꼭 가보라고 추천했던 필리핀 여행지가 있었다. '엘 니도'라는 섬이었다. 조이 씨가 말했었다. "거긴 천국이에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해요. 저도 가고 싶어요."
나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My friend recommend me a good place to travel in the Philippines.
(친구가 필리핀에서 아름다운 곳을 추천해줬어요.)
It's an island called El Nido.
(엘 니도라는 섬이에요.)
She said It's difficult to go, but it's a special destination.
(가기는 어렵지만, 특별한 여행지래요.)
선생님이 말했다. "In Palawan!" (팔라완에 있어요.)
"I think the best time to travel to El nido is during the summer season which is around April to June. It's not too hot as well."
(4월부터 6월 사이에 가는 게 좋아요. 별로 덥지 않아요.)
"You might not be able to enjoy the island when it's raining really badly during August to December.
8월에서 12월에 가면 그 섬을 즐길 수 없을 거예요. 그땐 비가 아주 지독하게 내리거든요.)
문득 내가 좋아했던 조이(Joy)씨가 보고 싶어졌다. 필리핀에서 온 그녀를 만난 곳은 우리 동네의 결혼이주여성 센터에서였다. 그곳에선 매주 주말 한국어교실이 열렸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한국어 자원교사라는 명목으로 결혼이주여성들과 수다를 떨러 갔다. 나는 조이 씨의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인자한 태도와 호탕한 웃음소리가 좋았다. 학생이었지만 나보다 두세 살은 많았을 것이다.
나는 조이 씨처럼 따뜻하면서도 똑똑하고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내 안에도 그녀의 이름처럼 기쁨과 명랑함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조이 씨가 학생이었을 때, 필리핀에서 공부하던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결혼하기 위해 몇 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대학원 학위를 따는 등 갖가지 준비를 한 끝에 결국은 한국에 와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당시에 취업을 준비하느라 늘 전전긍긍하고 조급했던 나와는 달라 보였다. 조이 씨는 도전적이면서도 여유로운 태도를 갖고 있었고, 게다가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 덕분에 필리핀을 더 잘 알고 싶어졌다. 필리핀의 국민 가수인 레아 살롱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필리핀에 관해 물어볼 때 함박웃음을 짓는 그녀의 즐거운 표정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전화영어가 마무리될 무렵, 선생님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1년 5개월 동안 전화영어를 하는 동안, 내게 한국말로 말을 건네준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비록 전화영어였지만, 지구촌 어딘가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한 사람과 소통한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 와중에 얻기 힘든 귀한 느낌이었다.
'엘니도', 코로나가 끝나면 꼭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