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을 읽고 든 생각
지난주부터 금요일 저녁마다 1시간씩 줌으로 책모임을 한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몇 줄씩 낭송한다. 줌으로 읽는 책은 <입보리행론>이다. 불교 책에 전혀 관심 없던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3년 전 여름휴가를 내고 다녀왔던 인도 여행에서였다. 그때 나는 북인도의 맥그로드 간즈라는 마을을 여행했었다. 눈앞에 히말라야가 보이는 이 마을은 1,700m 고산지대에 있다. 100여 년 전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을 땐 영국군의 휴양지였고, 몇 차례 큰 지진도 겪었다. 지금은 티베트 망명정부가 들어선 곳이다. 티베트인, 그리고 티베트 불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가 이곳에 산다. 인도 정부는 티베트 고원과 닮았다는 이 마을을 티베트 망명정부 터로 내주었다고 했다. 내가 여행하던 기간에, 달라이 라마의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전날 미리 받아놓은 출입증을 들고 법회에 들어갔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 이름이 쓰인 표지판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들 맨 앞자리엔, 각국의 언어로 통역해줄 자원봉사자들이 서 있었다. 절에선 버터 차와 공양 빵, 각국 말로 번역된 책자를 나눠줬다. 그것이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이다.
오늘은 4장과 5장을 읽었다. 읽은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었다. 4장 보리심 불방일품의 5번이었다. '불방일'은 삼가는 마음을 뜻한다. 번뇌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마음속으로 한 번 주겠다고 생각한 후
어떤 이에게도 주지 않는다면
아귀로 태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작은 무언가라도 남에게 주겠다고 마음먹고는, 그것을 주지 않으면 아귀(!)로 태어난다니. 나중에 뭘로 태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오래된 책은 '주겠다고 생각하고선 주지 않는 행위'를 거의 범죄(!)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나쁜 행위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이를테면 지인이 "이것 좀 알아봐 주실래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네, 그럴게요."라고 말하고서는 까먹은 적이 있다. (내심, 그 정도는 자기가 알아볼 수 있잖아,라고 생각했었다.) 출산한 지인에게 선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는, 못했던 기억도 난다. "그까짓 거 내가 해줄게~" 큰소리치고는, 잊은 듯이 지냈던 일도 있다.
지난해, 나는 지인 A에게서 영화표를 받은 적이 있었다. 거의 1년 만에 연락이 온 A는 대뜸 내게 영화표를 주겠다고 말했는데, 문득 나는 그가 몇 년 전에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영화관에 초대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그가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지키기 위해 내게 연락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생각 나서였는지. 하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고마웠다. 어쨌든 그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켰으니까.
책을 읽고 나 자신을 돌이켜 본다. 순간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내가 해줄게~"라고 허풍을 떨지는 않았는지. 또는 정말로 저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어서, '이것은 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을 먹어놓고 까먹고 지낸 것은 아닌지. 내가 먹었던 마음은 상대에게 전하고, 내어주고 싶다. (지금 이 마음도 생각했다가 까먹으면 곤란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