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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Jan 07. 2019

나는 촌스러운 이타주의자입니다

지금까지 쫄보 길을 걸어 왔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엄마 친구가 나에게 부탁했다. 자기 딸을 한번 만나줄 수 있겠느냐고. 고등학생 딸, 아니 고등학생이었던 딸은 몇 달 전 학교를 자퇴하고 방 안에만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내 이야기도 해주면 아이 마음이 풀릴지도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사실 나야 내 앞가림만 간신히 하는 정도지만, 겉으론 멀쩡한 성인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돈도 벌고, ‘올여름엔 어디 가볼까?’ 비행기 표도 알아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와 낯선 소녀 A는 동네 카페에서 과일빙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게 됐다.
 
처음 본 A는 웃음기가 없었지만 둥글고 예쁜 얼굴이었다. 입가에 핀 버짐이 조금 안쓰러웠다. 내가 먼저 과일빙수 한 숟가락을 푹 떠서 입에 넣었는데, 콩가루가 목에 걸려 캑캑 기침을 하고 말았다. 그때 아이가 처음으로 살짝 웃었다.
 
A를 만나기 전에 들었던 몇 가지 이야기. A는 올해로 18살이며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다. 가족들이 물어봐도 이유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집에서 키우는 시츄 강아지와 부둥켜 놀고 깔깔 거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학교를 그만둔 뒤로 말수가 확 줄었다.
 
가족들은 A가 친구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짐작할 뿐이다. 집에도 놀러 왔었던 친한 친구 3명 사이에서 오해가 생겨 틀어진 모양이다. 그래서 남은 2명이 붙어 다니고 A는 소외된 것 같다고, 무언가에 크게 상처 받은 것 같다는 얘기까지만 들었다.
 
가족들은 고등학교 3년은 금방 지나간다고 했고, 너만 원한다면 외국 유학도 알아보겠다고 설득해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빙수 한 입을 떠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A를 바라보다가, 교복을 입고 있던 10년 전쯤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모르는 얼굴들이 그득한 고등학교로 배정받았다. 교복 앞섶에 달린 붉은 스카프를 우리는 ‘미역’이라고 불렀다. ‘미역’을 달지 않으면 벌점을 받고 오리걸음을 걸었다. 선생님들은 들어와서 한마디씩 했다.
 
“여고 시절이 너희 인생의 제일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이다.” 그렇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여고생들의 생활이 푸릇푸릇하고 상큼하다고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내 여고 시절의 8할은 거무튀튀했던 것 같다.
 
입학하고 일주일째 되던 날. 어떤 여자애는 내가 자기를 째려봤다며 내 시험지를 쓰레기통에 버려놓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복 수하기 위해 좁지도 않은 복도에서 어깨를 세게 부딪친 뒤 아닌 척 다른 곳을 봤다. 신경전은 한두 달 만에 맥없이 끝났지만, ‘쟤가 안 보이면 내 속이 편하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었다.
 
한 번은 친한 친구와 다투었는데, 다음 날 친구가 울면서 자퇴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함께 엉엉 울다가 극적으로 화해한 적도 있다. 우리 옆 학교 남학생들과의 좌담회(를 빙자한 미팅)에 나갔는데, 그 중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 또 집에 와서 울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애매하고 답도 없는 걱정거리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엄마 아빠한테 말하기엔 민망하고, 담임선생님은 매일 지친 얼굴이었다. 결국은 나처럼 우울해 보이는 몇 명과 의기투합하여 “세상이 나한테 관심 좀 안 가졌으면 좋겠어!”라는 청춘 드라마스러운 대사를 외치기도 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었다.
 
선생님은 내 성적이 떨어지면 걱정했다. 늘 피곤해 보이는 담임선생님이 한없이 미우면서도, 한편으론 저렇게 무신경한 선생님에게 넘쳐흐르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제목을 물어봐 준다면 정말 신나게 얘기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노래도 잘 부르는데…. 대학엔 왜 가야 돼? 야간자율학습은 왜 해야 하지? 결국은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저 학교 그만 둘래요.”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부모님의 속상한 얼굴을 보기 싫었고, 마음을 터놓았던 바이올린 동아리 친구들, 성인이 된 다음에도 내게 먼저 연락을 해주시던 고3 담임선생님의 관심 때문… 이라는 모범적(!)인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쨌든 정말로 그랬다. 이해 받는다는 느낌, 너의 편이라는 따뜻한 눈빛, 그것만이 외로움에 빠진 사람을 구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수능 전날 분명 이렇게 기도했었다. “저를 대학에 보내주시기만 한다면, 저처럼 외롭고 상처 받은 아이들을 꼭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힘든 사람들 편에 서겠습니다.”
 
나는 운 좋게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미팅이며 소개팅이며 내게 휘몰아친 자유에 감격한 나머지, 수능 전날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잊고 있던 약속을 기억해낸 것은, 「대학내일」에 들어와 대학생들을 인터뷰했을 때였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위해 집회에 참석했다가 벌금형을 선고 받은 대학생 김샘씨.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본 뒤에 페미니스트 단체를 만든 대학생 이가현씨 등. 어려운 사람들의 편에 서서 용기를 내는 이들을 보고 내가 잃어 버린 것들이 떠올랐다.
 
‘외로운 사람의 편에 서겠다.’ 자기 앞가림도 벅찬 세상에서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위선적이라 여길 수도 있다. 남을 위해 살겠다는 많은 어른들이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빴던 사실을 우리는 봤고 실망해왔으니까. 자기 인생이나 즐기자는 개인주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부터 잘 살래”라는 많은 이들의 외침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겉으로 차마 내뱉기 부끄러울 뿐이다. 언젠가는 힘든 사람의 편에 서겠다는 촌스런 마음이 유행하길 바란다. 지금까지 쫄보의 길을 걸어온 나는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A가 내게 말했다. “저, 그냥 피곤해요. 아무도 제게 관심을 안 가지면 좋겠어요.” 나는 웃으면서 답했다. “나는 관심 있는데? 얘기 좀 해줘.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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