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테스트 결과 '마다가스카르'가 나왔다.
‘내가 살기에 가장 좋은 나라는?’
2~3년 전, 인터넷에서 유행한 심리테스트를 해봤었다. 여행 취향 질문들에 답하면, 내게 적합한 나라를 알려준단다. 테스트 결과 내게 어울린다는 곳은 ‘마다가스카르’였다. 아프리카 남동부의 커다란 아열대 섬. 가본 적은 없다. 예전에 EBS 세계테마기행 같은 데서 본 적이 있다. 바오바브나무가 자아내던 신비로운 풍경에, 저곳도 지구가 맞나 싶었다. 햇볕에 그을린 사람들은 바다에서 첨벙거리다 카메라를 마주하자 투명하게 웃었다. 마다가스카르는 어떤 곳이기에 내가 살기에 좋다는 걸까? 테스트를 만들다 말았는지, 해설은 나와있지 않았다.
마다가스카르인의 조상은 인도네시아인과 아프리카인으로 추정된다. 영국 연구팀이 마다가스카르 원주민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뜻밖에도 인도네시아 여성 혈통이 발견됐다. 이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 1,200년 전쯤 인도네시아인들이 500인승 배를 탔다가 난파해 5,600km 바닷길을 건너버렸다고. 어떤 기술로 그들이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어쨌든 후손들 DNA엔 항해의 흔적이 남았다.
7살 때부터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는 꿈을 꿨다. 동네 애들이 밥 짓는 흉내 내며 돌멩이로 꽃잎을 찧을 때, 나는 3개 국어로 말하는 어른 흉내를 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품었을까? TV에서 본 모험가들을 떠올렸던가? 주변엔 외국에 다녀왔던 사람은 전혀 없었다. 10대 시절 종종 나는 새로운 장소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돈 들이지 않고도 영어 배우는 방법을 10가지쯤은 찾아냈다.
내 로망에도 점점 살이 붙었다. ‘튀니지 구시가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민트차 마셔야지.’ ‘쿠바에선 살사 클래스에 등록하고 칵테일바에서 압생트 마실 거야.’ 나는 주말이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여행 사진집을 들춰보았다. 화가가 촬영한 사진집엔 검은 민소매 크롭티에 부츠컷 청바지를 입은 긴 머리 여자의 뒷모습이 있었다. “나도 그런 섹시한 여행자가 되고 싶어!” 그럴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렸다. 온종일 문제집에 머리를 파묻어야 하는 학교 생활이 어서 끝나길 바랐다. 바다 건너 마다가스카르에 불시착했던 인도네시아인들도 그랬을까?
27살에 직장인이 되어 월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한을 모조리 풀듯 비행기표를 끊어댔다. 28살 크리스마스는 일본 삿포로에서 보냈다. 29살 여름엔 모로코 마라케시를 여행했다. 피리 부는 남자에 맞춰 춤추는 코브라와 그걸 보며 웃는 어린이들, 타투해주는 여자들, 소매치기들을 보았다. 30살엔 회사에서 안식월을 받았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은 짜릿하다. 그 뒤로도 인도, 태국, 필리핀…. 나는 새로운 공기 냄새를 수집하는 사람처럼, 낯선 공항에 내릴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질문을 바꿔야겠다. 마다가스카르가 왜 내게 적합한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마다가스카르의 어떤 속성에 끌리는지? 만약에 누군가가 예순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내겐 천일 밤 동안 풀어놓아도 끊이지 않을 이야기가 있지.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신기한 모험담을 들려줄 거야. 얘들아. 너희 피리에 맞춰 춤추는 코브라 봤니? 히말라야의 어느 산 정상에서 먹는 카레라면 맛은 어떠냐면…? 할머니는 정말 신비로운 것들을 보았고 들었고 맛봤단다.”
오늘은 오랜만에 같은 테스트를 다시 해봤다. 이번엔 남태평양에 위치한 열대우림, '쿡 제도'가 나왔다. 쿡 제도는 또 어디야? 여기도 에메랄드 빛 바다가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사는 삶, 바다를 향해 달려 나가는 삶을 지독하게 꿈꾸나 보다. 남편도 테스트를 해봤는데 한국이 나왔다. 우리 집엔 마다가스카르와 쿡 제도와 한반도가 공존하는구나. 남편과 나는 마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