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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Feb 20. 2023

태아 심장 초음파를 보고 왔다

임신 20주, 중기 검사 마지막 단계 

2023년 1월 14일, 임신 20주 6일

정밀 초음파 보는 날


지난 두 달 동안은 1차, 2차 기형아 검사를 무사히 마쳤다. 정상, 비정상이란 단어는 때로 부당하게 사람을 가르는 단어지만, 담당 의사의 입에서 정상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내 나이 만 35세. 그리고 만 35세 이상 연령은 고위험 임신의 위험인자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말 그대로 '위험인자'(통계학적으로 관련 있는 해로운 원인 중 하나)라서, 나이가 곧 그 자체로 고위험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미톡(병원에서 깔라고 권유한 앱)이나 그밖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게 될 수록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임신하면 여러 검사들을 받게 된다. 다행히 모든 수치는 안정권으로 나왔다. 특히 내 철분 수치는 14.2였다. 의사는 이 수치가 또래 여성 상위 1%에 해당한다면서, 남성도 이만큼 나오긴 어렵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괜히 으쓱했다. 의사는 추가 검사(니프티, 양수 검사)를 권하지 않았다. 우리도 필수적인 검사만 받기로 했다. 임신 중의 추가 검사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예를 들어 니프티는 태아의 DNA를 검사해 유전적 질환을 미리 발견하는 검사다. 고위험군 산모가 원할 경우, 약 60~70만원을 지불하고 검사받으면 된다.


얼마 전, 2022년 30대 여성의 임신율이 전체 임신 여성의 35%에 달한다는 뉴스를 봤다. 지난 1~2년 사이에 아기를 낳은 학교 친구들도 너댓쯤 된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도 내 또래 산모들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선 고객인 내게 고령이나 노산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병원은 가장 친절한 간호사를 프론트에 앉혀두고, 산모에게 친절히 대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산모도 아이도 귀한 시대인데다가, 다들 인터넷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온갖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한 것, 내 속도에 맞는 임신과 출산

"넌 언제 임신할 거야? 네 나이를 생각해야지." 임신하기 몇 달 전, 지인의 그 말에 머리가 멍해졌었다. 그런 도발에 넘어가는 인생은 살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임신만큼은 다른 문제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아이 없는 인생은 상상한 적 없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는 내가 정하고 싶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다. 타의로 등떠밀려 임신하고 싶진 않았다.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속도에 맞추기도 싫었다. 대략 20살에 대학에 들어가 25~6살에 취업, 28살에 결혼, 32살에 집 사고 차 사기... 이렇게 남의 기준에 질질 끄달려 꾸역꾸역 살아가는 재미없는 인간만큼은 되기 싫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만큼은 과학과 기적, 둘 다의 영역이다. 깜짝 선물처럼 찾아올 수도 있고, 사람의 의지나 계획만으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내 나이가 빠르거나 늦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딱 내게 맞는 속도와 시간이다. 2022년 8월 말, 아이를 만나고 싶단 간절함이 우러나왔다. 친구와 함께 간 템플스테이에서 삼성각의 산신에게 기도했고, 이 세상 어디서든 여성들을 굽어살피고 있을 삼신할미에게도 기도했다. 마침 9월 초가 가임기였다. 그리고 5주 뒤쯤 임신테스트를 했을 때 선명하게 두 줄이 보였다. 곧바로 화장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남편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지만, 남편도 내 날카로운 비명(!)을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몇 달 동안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 임신을 시도할 생각이었는데, 곧바로 아이가 찾아와 줘서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감사했다. 



봉산탈춤, 배우길 잘했지

사실 나는 20대 때보다 30대인 지금 훨씬 건강하다고 느낀다. 지난 몇 년 동안 무용, PT, 요가 등 운동을 꾸준히 했다.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도 계속했다. 직장 생활 도중에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심리상담사를 찾았다. 틈틈이 친구와 여행하고, 명상하고, 휴식을 취하고, 과일과 음식을 잘 챙겨먹으려고 애썼다. 남편과 자주 껴안고 웃었다. 그러면 스트레스로 들뜬 마음이 포근하게 가라앉았다. 가족과도 자주 안부를 주고받았다.


지난해 운동 삼아 배웠던 봉산탈춤도 도움이 된 것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시민 대상으로 열었던 무료 교양 강의였다. 생각보다도 재밌고 신났다. 내 몸에도 잘 맞았다. 덕분에 나는 중도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수료한 3명 중 1명이 되었다. 당시 봉산탈춤을 가르쳐주던 50대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탈춤 추면 나중에 아이도 잘 낳아요.” 그땐 이게 왠 구시대적인 발언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과연 그런가...' 혼자 감탄하며 끄덕인다.


탈춤은 쉬워보이지만 전혀 쉽지 않다. 1시간 정도 뛰면 몸이 땀으로 흥건해진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쪼그렸다 일어나 뛰기를 반복하는 자세였다. 보기엔 쉽고 만만해 보여도, 초보자에겐 숨이 컥컥 찬다. 벌러덩 드러눕고 싶을 만큼 힘들다. 처음부터 곧바로 이 자세를 시작할 순 없다. 덜 풀린 근육이 놀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20~25분 정도 스트레칭으로 몸을 충분히 데워야 한다. 당시엔 그저 코로나로 갈 곳이 없었고 심심해서 갔을 뿐이었는데, 탈춤을 향한 애정이 솟은 것은 물론이요, 다리 근육과 골반 유연성을 키우기에도 완벽한 운동이었다. 어떻게 봉산 탈춤을 배울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내가 아주 기특할 지경이다. 



임신 중기 검사의 마지막 관문, 정밀 초음파

오늘 아침엔 약 20분 소요되는 정밀 초음파가 예정됐다.


초음파실 침대에 누우면, 산모에게도 보이도록 맞은편에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아이는 그새 자랐다. 4주 전엔 158그램이었는데 오늘은 358그램. 지난번엔 팔다리가 가늘고 앙상했었다. 의사 말에 따르면, 원래 16주 무렵엔 태아에게 살이 붙는 시기가 아니란다. 오늘 보니 볼살도 붙어 있었다. 초음파는 아기의 앞얼굴을 비춰줬다. 눈매가 나처럼 살짝 치켜올라갔을까, 남편처럼 처졌을까? 초음파 속 아기의 감고 있는 눈매는 살짝 아래로 처져 있었다.


아기는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 하며 입을 벌렸다가 다물기도 했다. 초음파실 선생님이 설명해 줬다. "양수를 마시고 있네요." "방금 오줌을 눴나 봐요. 방광에 들어있던 양수가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뇌주름과 척추, 코와 인중을 보여줬다. 심장의 오른쪽, 왼쪽 소리도 따로 들려줬다. "아기는 주차에 맞게 잘 자라고 있어요. 모두 정상이에요." 이젠 손가락 발가락을 봐야 하는데, 아기가 손으로 발가락을 잡으려고 움직여서 잘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흑백 초음파로 보이는 그 모습마저도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귀여워라."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잠시 기다렸다가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를 헤아려줬다. "여기가 엄지, 이쪽은 다른 손가락 네 개예요. 다 잘 있네요."


초음파를 끝내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고 말해줬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이 출산 때 아이를 받아주시죠? 만약 제가 새벽에 낳으면 어떻게 돼요?" 의사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초산이라 진통이 시작돼도 새벽에 혼자서 쏙 낳긴 어려울 거라며, 아침에 와서 받아주겠다고 했다. 만약 걱정된다면 전날 낮에 미리 와 촉진제를 놓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내심 걱정도 들었다. '선생님 퇴근 후에 아기가 나오면 어쩌지? 나를 진료하지 않은 다른 선생님이 받게 되려나...? 그건 좀 그런데.' 촉진제 여부는 아직은 미리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기도 자기 용을 쓰며 스스로 나오고 싶어할 수도 있다. 나와 아기 건강 상태가 훌륭하다는 전제 아래에,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진행하고 싶다.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엔 출출해졌다. 임신하곤 음식 생각이 많이 난다. 우선 콜드컷 반미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포장했다. 집에 와서 미니 오븐에 식빵을 굽고 동생이 여행지에서 사 온 레몬 마말레이드를 발라 먹었다. 아빠 친구가 봉화에서 길러 보내준 배추가 김치냉장고에서 열흘 째 놀고 있었다. '저녁엔 배추와 깻잎에 홍두깨살을 겹겹이 쌓아서 밀푀유 나베를 만들어 먹어야지.' 그리고 남편과 낮잠을 잤다가 눈 뜨니 낮 4시 반이었다.


저녁을 만들어야겠다는 야심찬 의지는 온데간데 사라졌다. 귀차니즘에 사로잡힌 우리는 동네 무한리필 훠궈를 먹으러 갔다. 백탕과 홍탕을 먹으려 했는데, 메뉴에는 "홍탕엔 정성스러운 한약재가 들어갑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산모가 먹어도 될지 직원에게 물으니, 직원은 사장에게 전화까지 해서 물어봤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홍탕은 먹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골육수와 토마토탕을 시켰다. 땅콩소스에 부추 소스와 삭힌 두부, 고수, 칠리소스를 얹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소스를 만들었다. 어묵 큐브볼, 새우, 연근, 건두부, 당면, 배추... 좋아하는 것을 다 때려 넣고 마지막엔 칼국수 사리까지 넣어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었다. 계산하고 나가는 길,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아이 낳고 홍탕도 드셔보세요. 여긴 홍탕이 가장 맛있어요." 영업인 줄 알면서도, 아까 바쁜 와중에도 전화를 물어봐준 직원의 성의와 친절함이 고마워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토요일을 기분 좋게 보냈다.



+ 임신하면 산부인과에서 받는 검사들

4~6주 임신 확인 검사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한다. 아직까진 아기의 크기가 아주 작아서 질 초음파로 봐야 한다. 매우 초기엔 아기집만 보일 수도 있다.

8주 초기 검사

이번에도 질 초음파로 아기 상태를 확인한다. 피를 뽑는 검사도 한다. 이를 통해 산모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B형 간염 항체와 풍진 항체가 있는지, 간과 갑상선 기능엔 문제가 없는지, 빈혈 수치는 적절한지, 성병균이 있는지, 비타민D가 충분한 지 등을 알 수 있다.

10~14주 1차(초기) 기형아 검사

나는 13주차에 검사를 받았다. 배로 보는 정밀 초음파를 검사를 통해 아기의 목투명대를 측정한다. 목투명대는 아기의 목덜미에 있는 투명한 공간이다. 이곳의 피하 두께가 3mm 이상이면, 의사 소견에 따라 다운증후군 등 염색체 이상 여부를 의심할 수 있다.  

15~20주 2차(중기) 기형아 검사 

복부 초음파로 아기 크기와 상태를 본다. 혈액 검사(쿼드 테스트)를 통해, 아기의 염색체 이상 여부(신경관 결손, 다운증후군, 에드워드증후군, 파타우, 터너증후군 등)을 확인한다. 이 검사 결과는 확진이 아니라 가능성을 뜻한다. '고위험군'이 곧 아기에게 이상이 있단 뜻은 아니다. '저위험군'이라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뜻이다.  

20~24주 태아 심장 초음파(정밀 초음파) 

이전과는 달리 20분~1시간 정도 걸쳐 초음파로 자세히 본다. 호두 모양의 건강한 뇌, 척추뼈, 손가락 발가락, 이목구비, 양수 먹는 모습, 방광, 오줌 누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검사를 통해 아기의 신체 구조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검사까지 마치면, 임신 중기의 중요한 검사는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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