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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Feb 21. 2023

남들의 편견 어린 시선을 마주하는 방법

책 <열하일기~> 속 연암에게서 힌트를 얻는다.


남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는 어떤 태도로 대응해야 할까? 오늘 읽은 책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는다.


나는 요즘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살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있다. 책의 주인공은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은 조선 정조 시대에 살았다. 허생전의 저자, 명문가였던 반남 박 씨의 자제, 원한다면 벼슬을 할 수 있었지만 요리조리 과거 급제를 피하고자 애썼던 사람, 박제가 등 서얼 출신 실학자들과 절친이었던 양반…. 그리고 연암은 청나라로 향하는 사신 행렬에 직책도 없이 끼어 다녀와 <열하일기>를 남겼다.


책을 보면 연암은 꽤나 자기 객관화 능력이 있어 보인다. (자기 자랑도 담백하게 잘한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기를 볼 줄 아는 것 같다. 청나라나 몽골 사람의 눈으로 조선 일행을 되비출 줄도 안다. 청나라 사람의 편견 어린 시선에 비친 자신(조선인) 일행은 사실 하잘 것 없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옳다거나 그르다고 판단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의 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낯설게 바라본다.


또한, 청나라를 배격하고 명나라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북벌론을 펼치던 (그러나 힘없고 입만 살아있던) 조선 사대부와 유생과는 달리, 청나라의 신문물과 거리의 요술쟁이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심지어 당시 조선 사대부라면 절대 가까이해선 안 됐던 티베트 불교의 역사와 판첸 라마에 관해서도 자세히 기록해 놨다.


책을 읽다가 재밌었던 부분은 '고린내'와 '도이노음'이었다.(249쪽) 청나라 사람들은 지독한 냄새를 맡으면 ‘고린내’라는 말을 썼다. 조선 사람들도 그것을 따라 고린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원을 따지면 발냄새났던 고려인을 일컬어 고린내라고 말하던 관습이 전해온 것이었다. 한편 조선 사람들을 청나라 사람을 되놈이라고 낮잡아 불렀다. 청나라 하인들은 어원도 모른 채, 청나라인을 가리키는 단어인 줄 알고 스스로 "도이노음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조선 사람과 청나라 사람 모두, 각자의 눈엔 서로가 지저분한 습관을 지닌 오랑캐일 뿐이다. 남의 눈에 비친 나는 ‘고린내 나는 놈’이 될 수 있고, ‘도이노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판단 없이 보면 그저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재밌는 충돌과 섞임일 뿐 아닌가?


연암 자신은 조선의 학자요, 먹물 냄새 풍기는 공붓벌레다. 하지만 청나라 사람들 눈에는 변방에서 온 사신단의 하나일 뿐이다. 아래 발췌한 문장에는, 연암이 남들의 '편견 어린 고루한 시선'에 대응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무부, 고기 세 가지. 이것이 이국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자신은 그저 오래전부터 자잘한 공붓벌레, 곧 하릴없는 식자층의 일원일 뿐이다. 물론 그 어느 것도 연암의 진면목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지 않다고 우길 것도 없다. 어차피 '내가 누구인가는 타자의 호명 속에서 규정되는 법'. 쏘가리도 되었다 새우도 되었다 가오리도 되었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오리 온다'는 '고려인 온다'는 뜻이다.) 타인들의 고루한 편향을 보는 건 쉽다. 그러나 그 시선을 자신에게 비추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을 기꺼이 타자의 프리즘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고정된 위치를 벗어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의 자유다." (293쪽)


내게도 그런 남들이 있었다. "넌 이런저런 사람일 거야."라며 평가하는 사람들. 어떤 때는 그것이 내게 유리한 칭찬이자 오해이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부당하고 억울한 편견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든 그런 시선과 평가를 전혀 받지 않고 살 순 없다. 또한, 누구든 자기도 남을 향해 그런 평가를 하면서 살아간다.


모르는 사람들 눈에 나는 때론 '차분하고 단정한 모범생', 친구들 눈에 나는 '밝고 명랑하고 잘 웃는 애'. 남편 눈에 나는 '속이 훤히 드러나는 사람, 종종 급발진하는 둔팅이.' 엄마 눈에 나는 '까다롭지만 똑똑하고 당차고 착한 딸.'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눈엔 어떻게 비치려나? '웃음기 없고, 정색하고, 경직된 얼굴에, 겉핥기식 말만 겨우 대꾸하는 재미없는 사람'이려나?


예전엔 나를 향한 이런저런 평가가 불편했지만, 그 평가가 틀렸다고 우길 것도 없다. 이것도 나, 그것도 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웃어넘기며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내가 누구인가는 타자의 호명 속에서 규정되는 법'이라는, 책 속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나를 향한 남들의 시선은,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가 될 수도 있다.


어제저녁 책 세미나에선 한 선생님이 내 인상에 관해 이렇게 말해줬다. 이 쌤은 나와 지난 1년 동안 고전 세미나를 함께 했던 분이다.

“영특해 보여요. 욕심도 많아 보이고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 수용력이 좋아요. 유심히 귀 기울일 줄 알아요. 수용할 건 수용하고, 반대하는 생각은 반대한다고 말해요.”

내가 그렇게 보이는구나. 1년 간 나를 지켜보고 해준 여러 말들이 고마웠다.


함께 매일 백일글쓰기 중인 ‘띠동갑 글쓰기 클럽’의 루씨 쌤은 이렇게 말해줬다. 우린 매일 서로 글을 공유하고 읽는다. 요즘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가장 잘 알고 계실 분이다.

“제가 보기엔 ‘웃고 사랑하는 데 큰 재능이 있는 사람’이에요.”

나도 몰랐던 나의 특징을 하나 더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도 열린 마음으로 내 주변과 사람과 사물을 세밀히 관찰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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