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느낀 글쓰기 기술 하나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었다. 쉽게 읽힌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라는 고전을 다루는데도 말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책 중간중간, 철학 용어나 개념어가 별다른 설명 없이 나온다. 리좀, 클리나멘, 탈코드화 같은 철학 용어에도 딱히 주석을 달지 않았다. 대신에 책 뒤편 부록에 이 용어를 간략히 설명해 놓았다. 어떤 단어는 인터넷 사전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궁금한 게 생겼다. 고전을 설명하는데도 어째서 이 책은 어떻게 쉽게 읽힐까? 이 책에서 찾은 글쓰기 방식은 아래와 같다.
첫째, 대부분 문단은 8~10줄로 이뤄져 있다. 짧으면 2~3줄, 길어도 15줄 이내에서 쓰인다.
둘째, 문단마다 맨 첫 문장에 해당 문단을 아우르는 한 줄이 나온다. 예를 들어 문단 첫 문장에 "내용들이 아주 재미있다."라고 썼다면, 그 문단에는 작가가 재밌다고 느꼈던 인용문이 들어간다. "그가 가장 주목한 동물은 코끼리다." 이 첫 문장 아래엔 연암이 바라본 코끼리 얘기만 포함된다. "조선시대 연행에서 '유리창'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문단에선 유리창이 왜 각별한지,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한다.
셋째, 무엇보다도 저자는 자기가 서술하는 문장에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장에서 머뭇거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의 공부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주장이 아니라 근거와 논증으로 꽉 찬 글이다.
덤으로, 자기 입말을 사용한다. 저자는 고전을 공부한 고전 연구가지만, 일부러 고색창연한 단어를 남발하거나 엄숙한 학자풍으로 쓰지 않는다. 문장은 간결하다. 보통 책엔 쓰지 않는 물결(~)도 쓰고, 눈웃음(^^)도 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문단들은 효율적인 두괄식으로 구성돼 있다. 멋들어진 문장이 쓰인 책은 아니다. 기교도 없다. 소설처럼 문학적이지도 않고, 카피라이팅처럼 인상 깊은 한 문장도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문장마다 한 가지 뜻이 정확히 들어있다. 그리고 매 문단의 첫 문장은 글을 이해하기에 훌륭한 입구가 되어준다.
정리!
1. 한 문단을 8~10줄로 구성한다.
2. 각 문단의 첫 문장엔 해당 문단을 아우르는 한 줄을 쓴다.
3. 주장만 난무하는 글이 되지 않도록, 공부해서 근거를 모아 쓴다.
4. 멋 부리거나 있어 보이는 느낌을 흉내 내지 말고, 자기 말투로 써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