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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Mar 06. 2023

멋없어도 정확하게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느낀 글쓰기 기술 하나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었다. 쉽게 읽힌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라는 고전을 다루는데도 말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책 중간중간, 철학 용어나 개념어가 별다른 설명 없이 나온다. 리좀, 클리나멘, 탈코드화 같은 철학 용어에도 딱히 주석을 달지 않았다. 대신에 책 뒤편 부록에 이 용어를 간략히 설명해 놓았다. 어떤 단어는 인터넷 사전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궁금한 게 생겼다. 고전을 설명하는데도 어째서 이 책은 어떻게 쉽게 읽힐까? 이 책에서 찾은 글쓰기 방식은 아래와 같다.


첫째, 대부분 문단은 8~10줄로 이뤄져 있다. 짧으면 2~3줄, 길어도 15줄 이내에서 쓰인다. 


둘째, 문단마다 맨 첫 문장에 해당 문단을 아우르는 한 줄이 나온다. 예를 들어 문단 첫 문장에 "내용들이 아주 재미있다."라고 썼다면, 그 문단에는 작가가 재밌다고 느꼈던 인용문이 들어간다. "그가 가장 주목한 동물은 코끼리다." 이 첫 문장 아래엔 연암이 바라본 코끼리 얘기만 포함된다. "조선시대 연행에서 '유리창'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문단에선 유리창이 왜 각별한지,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한다. 


셋째, 무엇보다도 저자는 자기가 서술하는 문장에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장에서 머뭇거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의 공부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주장이 아니라 근거와 논증으로 꽉 찬 글이다. 


덤으로, 자기 입말을 사용한다. 저자는 고전을 공부한 고전 연구가지만, 일부러 고색창연한 단어를 남발하거나 엄숙한 학자풍으로 쓰지 않는다. 문장은 간결하다. 보통 책엔 쓰지 않는 물결(~)도 쓰고, 눈웃음(^^)도 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문단들은 효율적인 두괄식으로 구성돼 있다. 멋들어진 문장이 쓰인 책은 아니다. 기교도 없다. 소설처럼 문학적이지도 않고, 카피라이팅처럼 인상 깊은 한 문장도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문장마다 한 가지 뜻이 정확히 들어있다. 그리고 매 문단의 첫 문장은 글을 이해하기에 훌륭한 입구가 되어준다.



정리! 

1. 한 문단을 8~10줄로 구성한다. 

2. 각 문단의 첫 문장엔 해당 문단을 아우르는 한 줄을 쓴다.  

3. 주장만 난무하는 글이 되지 않도록, 공부해서 근거를 모아 쓴다. 

4. 멋 부리거나 있어 보이는 느낌을 흉내 내지 말고, 자기 말투로 써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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