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는데 나는 생각보다 완벽주의자였다.
“꼼꼼하게 바느질하셨네요. 원래 꼼꼼한 편이죠?”
“아니에요.”
살면서 꼼꼼해 보인다는 말은 1239번쯤 들었고, 아니라는 말은 1240번쯤 한 것 같다.
낮에 동네 보건소 태교 교실에서 애착인형을 만들었다. 60대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 바느질을 가르쳐준다. 선생님은 평가하는 말을 자주 해서 듣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이다. “잘하시네요.” “손이 빠르시네요.” “꼼꼼하시네요.” “아주 잘했어요.” 빈말일지언정 수강생을 응원해주려고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바느질만큼이라도 좀 못하고 싶다. 세상엔 왜 이렇게 잘해야 하는 게 많을까? 천천히 하셔도 된다든지, 자기 스타일대로 하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도무지 없다. 아이의 물건을 내가 손으로 만들어준다는 의미가 중요하지. 그래서 나는 내 속도대로, 삐뚤빼뚤 서툴게 만들고 있다.
선생님은 한 술 더 떠 산모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자극하는 구시대적인 발언까지 태연하게 한다. “모유 수유가 아이에게 좋아요”라거나, “친정 엄마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니면 “노산이시네요.”까지. (나는 ‘친정 엄마’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친정 엄마’라는 말을 안 쓴다. 엄마는 엄마인데, 굳이 ‘친정’이라는 꾸밈말이 왜 필요할까? 남편은 깔끔하게 ‘엄마’라고만 한다. ‘본가 엄마’ 라거나 ‘친정 엄마’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어쨌든 완벽한 조건을 못 갖춘 몇몇 수강생들은 저 말을 듣고 쭈글쭈글해진다. 모유 수유를 못할까 봐 쭈글,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쭈글, 노산이란 말에는 기어이 고개를 떨궈버리고 만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맥이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딱 질색이다.
자, 어쨌거나. 말하려는 얘기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나는 꼼꼼하고 차분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사람들은 곧잘 나를 성실하다고 오해한다. 뭐, 불성실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급하게 후다닥 공부하고 일하다 빼먹은 것들도 꽤 있다. 만약 내가 꼼꼼해졌다면, 생존을 위해 후천적으로 학습한 결과다. 나는 움직이고 여행하기를 좋아하며, 의외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신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 얼굴만 보고 얌전하고 고분고분한 사람이기를 기대한다. 그랬다가 내게서 뜻밖의 모습을 발견하면 “쟤 왜 저래?”라며 제멋대로 실망한다. 이 패턴도 아주 지긋지긋하다. 이번에도 또 그러네. 그래요. 마음대로 생각하쇼!
내가 만든 토끼 인형을 다시 한번 봤다. 도톰한 흰 천 두 장을 겹쳐놓고 박음질을 했다. 그런데 제법 촘촘하고 꼼꼼했다. 제법이 아니라 아주 꼼꼼했다. 솜이 튀어나올 틈이 보이지 않았다. 나, 꼼꼼한 사람 맞는 걸까? 맞는 것 같다. ‘바느질, 못하면 어때?’라고 표면적으론 생각하면서, 사실은 이 바느질마저도 꼼꼼하게 잘하고 싶었던 거다. 솜이 튀어나오는 게 싫었고, 박음질 간격도 촘촘하고 일정하게 유지하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당시엔 몰랐지만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살면서 완벽주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이것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세워놓은 높은 기준에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결과물에 스스로 만족한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나를 바라보는 냉엄한 눈은 남에게도 적용됐다. 내 눈에 차게끔 일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도 적었다. 일은 고역이 되어갔다. 번아웃 급행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동시에 나는 완벽주의 성향과 승부욕을 남에게 들키기 싫어했다. 꼬장꼬장하고 민감하고 하나하나 체크하는 모습은 숨겨두고 싶었다. 대신에 너그럽고 털털하고 편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글마저도 완벽하게 쓰려고 했기 때문에 한 글자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마구 쓰는 시간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