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동안 발품판 끝에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남편과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닌 지 넉달. 드디어 새 전셋집을 계약했다. 이 집을 보자마자 둘다 마음에 쏙 들어서 '여기로 해야겠다' 결정했다. 우리 또래의 젊은 집주인 부부는 내부를 깔끔하게 수리해 놓았다. 남서향 거실에서 바라보면 전망이 훅 트여있다. 나도 좋은데 남편은 나보다 훨씬 좋아한다. 지난 4년 동안, 회사 근처 대학가의 웃풍 드는 투룸에서 살아온 우리에겐 뜻깊고 감개무량한 날이다. 그새 집이 나가버릴까봐 남편은 어젯밤에도 잠 못 이뤘다.
다른 동네로 이사해보려고도 했다. 몇 달 동안 발품 팔아 스무 곳 넘게 둘러보았다. 나중에는 '그 아파트 이름이 뭐였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지인들이 추천해준 낯선 동네에 가보기도 했다. 면목동, 문래, 신도림, 구로... 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살던 익숙한 동네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석 달 전, 남편은 이 아파트 단지의 저층 집(지금 집 아님!)을 보고 처음으로 "설렌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느낌이 난다나 뭐라나. "서울 아파트 느낌이 뭐야?"라고 물었더니 "이런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당시 봤던 집은 내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볕도 충분히 들지 않았고 수리도 되지 않은 집이었다. 다행히도 여러 운이 겹쳤다. 이전 집의 주인은 계약 만료일을 석 달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에게 줄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도 겨울보단 따뜻한 봄에 이사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덕분에 지금 집을 발견했다.
이 주변엔 우거진 나무숲을 거느린 종교 건물이 있다. 그래서 베란다 문을 열면 상쾌하다. 초등학교와 주택가를 마주해,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도 난다.
남편이 내게 말했다. "너는 반드시 어떤 집에 살아야 한다고 말한 적 없었지." 생각해보니 내겐 반드시 살아야 하는 집의 조건이랄 게 딱히 없었다. '우선 상황에 맞춰 살면 되지.' '나중에 돈 벌면 그에 맞게 옮겨가면 되지.' 그런 마음이었다. 당장은 그럴 듯한 집에 살지 않아도 괜찮으니, 대출은 줄이고 싶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랬을 뿐인데, 남편은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남편도 내심 집 문제로 압박을 느꼈었나보다.
집을 구하면서 서로의 취향과, 선호, 기호를 알아간다. 나는 빛이 잘 드는 남향이나 남동향, 동향이 가장 중요하다. 남편은 시원하게 트인 전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앞이 갑갑하게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으면 답답해 한다. 남편은 거실 창문 앞이 가려지지 않고 훅 트여있기를 원한다. 심지어 그럴수만 있다면, 남편은 2년 전엔 북향도 괜찮다고 했었다. 물론 북향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내가 말렸지만...
요즘은 워낙에 좋은 집, 안전한 집 구하기가 어려운 시기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저절로 이 말을 내뱉었다. "앞으로도 착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