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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 Apr 11. 2020

인스타그램을 끊었다.

백수로 살기가 이렇게 팍팍한 줄 미처 몰랐지, 나는.

퇴사 후 1개월이 지났다.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가 없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돌린 수십 통의 이력서는 어디로 간 걸까. 냄비 받침으로 쓰지도 못할 내 8년의 경력이 담긴 종이쪼가리 세 장.


싱가포르는 사회 전체를 마비시켰다. 나중에 세금으로 다 해결해줄테니 지금은 잠자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식이다. 모든 식당에서는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고, 직원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어떻게든 돌리라고 한다. 나중에 세금으로 다 해결을 해 줄테니 무조건 Freeze. 이동 금지.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택 근무를 하며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사람들이 한가하기는 한가한지 유난스럽게도 왓츠앱이 많이 온다. '확찐자'가 되고 있다는 우스꽝스러운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을 끊었다.


고작 한 달 간의 무직 생활이 사람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는구나 싶다. 나가면 돈을 쓰게되는 게 두려워 차마 집 밖으로 한 발자국을 못 나간다. 문자 그대로 밥을 먹듯이 하던 '와인 들고 놀러갈게'라는 한마디를 하기가 어렵다. 맛이 없다며 마시지 않던 인스턴트 커피만 마시며, 그렇게 먹기 싫어하던 젖갈류를 꺼내 먹는다.


조언을 하는 말들도 듣기가 싫고, 나는 이렇게 힘이 든데 농담따먹기 하고 있는 모습도 보기가 힘들고, 나는 바닥이 보이는 젓갈에 햇반을 데워먹고 있는데 그랩 푸드 딜리버리 할인코드를 공유하는 모습이 부러워 왓츠앱도 지울 뻔 했다. 


생리도 50일만에 하고, 방바닥에는 머리카락이 넘쳐난다. 

이토록 취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미안한 마음이 따라온다.


자괴감이나 불안함이 드는 옅은 회색을 띈 마음 바로 옆에, 짙은 푸른색의 미안한 마음이 가득 따라온다. 


컵밥을 보내주겠다며, 닭발이나 대창이 먹고싶으면 가는 길에 해동되지 않게 잘 포장해서 보내줄테니 언제든 필요하면 말만 하라는 우리 못난이. 여전히 공무원을 준비중인 우리 못난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막막함과 불안함에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보냈을까. 당당하고 재밌었던 고등학교 때의 못난이가 차마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겠다는 취준생이 되어가는 그 기간동안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생겼을까. 


다 지나갈거라며, 일단 아빠 집으로 들어와 살아도 된다며, 나의 그 시절에는 도움이 없었지만 너의 그 시절에는 내가 도움을 줄테니, 아빠가 야식 만들어 줄테니 같이 넷플릭스 보자는 우리 아빠의 책임감과 막막함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한 겨울에 두꺼운 후드티로 충분하다던 딸을 쳐다보면서 느꼈을 막막함과 아빠는 나에게 해준 게 무엇이냐며 소리를 지르던 딸년을 보면서 느꼈을 그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을 내가 무엇으로 위로를 해야 할까.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읽으면서도, 건강을 유지하겠다며 운동을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계속 든다. 왜인지 푸른색으로 그려지는 건 이들에게 진 빚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리라.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그 곳에 올리는 맛있는 스테이크 사진은 나의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항상 사랑하고 아주 많이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진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차마 들지 않지만 그들로 하여금 빚을 지게 해 또이또이로 만들어보겠다는 못된 심산이 있음은 부정하지는 않겠다. 이기심이라 욕해도 할 말은 없다. 내 미안함, 책임감을 덜어버리려는 이기심으로 인한 행동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이기심 이전에 그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진심. 할 수 있는 것이라도 먼저 하고 싶었다. 꼭 전하고 싶었다. 가만히 견뎌주어 고맙고, 내가 신경쓰지 않았던 당신의 그늘진 감정에 미안하고, 세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아끼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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