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디아 Apr 12. 2020

100원으로 만 명 살리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케될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른다.

2016년. 당시 나는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 생활에 염증이 날대로 난, 덧날대로 덧난 상태였고 오래된 남자 친구와도 싸움이 부쩍 잦아졌으며 친구들은 모두 고시공부를 한다고 잠수를 탔을 시기였다. 아주 가끔 지하철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아 사당역에 내려 헛구역질을 하긴 했지만 딱히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꽤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일상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답답해했고, 조금 지루해짐을 느낄 뿐이었다.


어떤 경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페이스북에서 여행 관련 콘텐츠를 보고 친구 추가를 했던 것 같다. 현재 1등 시니어 애플리케이션 케어닥의 대표로 있는 박재병이라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마냥 돈만 쓰거나 마냥 새로운 문화에 맛들 린 가벼운 사대주의 냄새가 짙은 여행이 아닌 여행을 통해 배우고, 나누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꽤 진지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나와 같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취업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마음과 물질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그의 팬클럽에 가입을 했다. 1만 원을 내면 가입을 할 수 있었고, 그는 그 만 원으로 여행 경비를 충당했으며 우리에게는 나눔의 공동체라는 소속감을 주었다. 팬클럽에 가입된 사람들을 모아 쪽방촌으로 봉사활동을 가기도 했고, 우리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친목을 다져갔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밸리 댄서, 패션 디자이너, 햄버거집 사장, 백수, 여행가, 사업가 등. 200명이라는 꽤 많은 수의 사람이 모였으니 배경이 다양한 것은 당연했다. 신기했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해 한동안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에 심취를 했더란다.


사단법인 코인트리 대표 한영준. 꽃거지라 자칭한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한영준'이라는 사람을. 일명 꽃거지라고 자칭하며 다니는 세계 여행자였는데 여행을 다니며 볼리비아에 학교를 세웠다고 했다. 과테말라와 스리랑카에는 이미 집과 농장도 선물해줬다고도 했다. 여행을 다니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한 것도 신기한데 스리랑카에 지은 집은 심지어 결혼 선물이라더라. 도대체 무슨 돈으로? 하는 생각에 두리번거려보니 더 가관이다. 기부금을 받아 집을 짓고, 학교를 세우는데 그 기부금이 모두 동전이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 나누면 기쁨과 행복이 배가 된다는 것 혹은 작은 마음들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것 따위는 알겠는데 100원이라니.



나는 한비야의 책을 굉장히 감명 깊게 읽고 언젠가 NGO 단체ㅡ월드비전ㅡ에서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다양한 이유로 흩어져버린 꿈이지만 어쨌거나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뿐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는 일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 알아보던 중 아프리카에 있는 어린이를 지정해 정기 후원을 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왠지 아프리카에 가난한 아이들을 돋는 것만이 NGO단체의 사명 혹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8년을 넘게 후원을 했다. 총 30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저 불쌍한 가난한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빈곤 포르노에 넘어간 것이다.


그러다 20대 중반 즈음 항공기에서 유니세프의 광고를 보고 문득 역겨워짐을 느꼈다.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지금까지 받은 사이디의 편지와 사진들을 보며 미안함에 사무쳤다. 벌써 10대 중반이 되어버린 사이디는 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나는 이 아이를 불쌍하게만 여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 달에 3만 원이라는 금액을 보내며 나는 누구보다 이타적인 척, 사람을 위하는 척했지만 결국은 내 이기심과 알량한 우월감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당장 후원을 해지했다. 사이디는 이미 기술을 배워 가족 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편지를 받은 이후라 후원을 해지하는 건 무엇보다 빠르고 쉬웠지만 내 죄책감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꽤나 트라우마였던 탓에 그 어느 곳에도 쉽게 후원을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이기심으로 인함이 아닌 진정으로 사랑하고 나누고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후원을 하고 싶었다. 빈곤 포르노를 보며 우쭐함을 느끼는 나의 더러움이 싫었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하는 행동과 글을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이 사람이 진짜인지 궁금했다. 마케팅 포인트를 잘 잡은 것뿐인지, 진짜 어딘가에 꼭 필요한 일을 이 사람이 대신해주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여타의 비영리단체를 가장한 기업체라면 깔끔하게 거르고 싶었다. 그렇게 첫 후원을 하기 전까지 무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음을 담은 당신의 후원이 아이에게 책가방과 미소를 선물한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ㅡ그에게는 거의 10년 가까이, 그는 끊임없이 100원을 구걸했다. 하루 100원만, 한 달에 3000원만 주면 아이들이 굶지 않고, 구충제를 복용하고, 속옷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최대 한 달에 1만 원까지 후원이 가능하지만 하루 100원만이라도 달라고 구걸했다. 그렇게 하면 위생 교육, 성교육과 더불어 부모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될 거라 했다. 고생은 내가 다 할 테니 당신은 하루에 딱 100원만 달라고 끊임없이 구걸했다. 마음으로 짓는 학교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기적을 보여주겠다 호언장담하며 끊임없이 구걸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그렇게 모인 100원으로 볼리비아의 뽀꼬뽀꼬 마을에는 1개의 교육 센터, 1개의 기숙사, 3개의 도서관에서 96명의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음과 더불어 매년 2회에 걸쳐 900명의 학생이 학용품을 지원받고 있고, 멕시코에서는 1개의 교육센터, 1개의 기숙사, 1개의 도서관에서 70명의 학생들이, 스리랑카에서는 1개의 방과 후 학교에서 18명의 학생이, 1개의 특수아동 아카데미에서 총 38명의 장애아동이 교육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멕시코에 사랑꽃병원 설립 또한 준비 중에 있다.


사실 2년 반 전, 사랑꽃 병원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내심 '.. 진짜?..'라는 일말의 의심이 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보다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한 병원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망상처럼 들리기도 했다. 게다가 의료 혹은 위생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나 지식을 대중에게 심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 때문에 과연 난데없는 아시안 부부가 멕시코에 병원을 짓는다고 했을 때 허락하는 멕시코 정부나 지자체가 있을까 싶기도 했고 인력 수급은 물론이거니와 소독 문제, 전기, 일회용품 나아가서는 감염 문제까지... 다뤄야 할 일이 산더미일 텐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지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꽃거지의 진심과 그로 인한 실행력을 확인한 나는, 가까운 미래에 멕시코 낀따나루의 사랑꽃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기본 의료 및 위생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작은 노력과 마음이 그들에게 닿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볼리비아 뽀꼬뽀꼬의 희망꽃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뛰어놀고,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인스타그램을 끊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