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상맛집 Oct 08. 2019

부서진 녹색진보의 대안과 트럼프 당선의 이유. 켄 윌버

요약후기│켄 윌버, 진실 없는 진실의 시대

켄 윌버(Ken Wilber)의 책은 나에게 늘 설렘과 새로운 통찰을 준다. 나의 부모님 또래인 켄 윌버(1949년생)는 23세에 첫 책을 쓴 후, 현재 총 20권 이상의 책을 냈고 25개 언어로 번역이 되었다. '의식 연구 분야의 아인슈타인'이라고까지 평가받는 그는 심리학과 철학, 과학과 영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하여, 거대하고도 촘촘한 통합 이론(=세계관)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한다.


이번 책, '켄 윌버, 진실 없는 진실의 시대'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언론과 사람들의 충격(혹은 환영)과 소란들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핵심적인 원인과 쟁점을 긴 에세이 형식으로 온라인에 올렸던 것이 트럼프 취임 3개월 차 즈음 출간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한국어판은 2017년 12월 김영사에서 나왔다. 출간 당시 소개 기사들이 몇 있는데, 그중 시사IN의 장동일 소설가는 이 책을 '여느 트럼프 관련서와는 크기가 다르다'라고 평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그리고 한국)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힌트와 방향성을 얻었다. 우리가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그 소용돌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 부서진 녹색(Broken Green)

이 책에는 밈(Meme)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밈은 '비유전적 문화 요소'라고 정의되며, 공통적인 가치관이나 (정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윌버가 분류한 밈은 6가지 색(더 상층까지 가면 8가지, 더 상층까지는 총 12가지 색)으로 이루어진다. 아래 표는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요약해 놓은 것이지만, 너무 복잡하니 재빨리 넘어가고, 이 글에서는 딱 4가지 색만 기억해주시면 된다. 성장의 순서로, 앰버(Amber≒연갈색)→오렌지녹색터콰이어(Turquoise≒하늘색)이다.

그리고 나의 이해로 구분하자면, 앰버색가부장적 민족주의(=전통), 오렌지색과학적 계몽주의(=근대), 녹색포스트모더니즘과 다문화적 생태주의(=탈근대), 터과이어색지식과 감정이 통합된 조화로운 상태(=가까운 미래, 통합의 시대)로 볼 수 있다. 켄 윌버 성장이론의 한 가지 특징은 새로운 단계의 성장이 이루어질 때 A가 사라지고 B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A가 A+α로 이루어진 A'로 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원자의 단계가 원자의 토대 위에 세워진 분자의 단계로 진화하는 형태다.


서론은 이만 줄이고, 녹색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오늘날 진보적인 성향의 여러 주장들은 녹색의 밈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주로 소수자 권리의 확장처럼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더 공정하고 평등한 가치관, 환경 운동처럼 인간 이외의 생명체까지 확장되는 배려 등인데, 건강한 녹색은 모든 억압들로부터 모두(특히 소외된 집단)의 자유를 수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너무 과하거나 방향을 잃으면 '부서진 녹색'이 된다.(책에서는 '붕괴된 녹색 Broken Green'이라 부르지만, 저는 느낌이 더 직관적으로 와 닿는 '부서진'을 썼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세우기 위해 기존의 불합리한 가치들을 공격하다가, '어떤 진실도 다른 진실보다 더 높은 권위 혹은 권력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을 가슴 깊이 품고, 눈에 띄는 모든 권위를 부수는 광기에 이른다. 책에서는 이 상태를 '무관점적 광기'라고 부른다. 이때 녹색은 허무주의(니힐리즘)에 빠지고, 그 혼란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자기 자신의 가치와 욕구만큼은 진실하고 가치 있다 여기는 자기애(나르시시즘)다. 

> 녹색의 가장 큰 오해, 그들이 나를 억압해왔다는 믿음

여기서 녹색에게는 한 가지 중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녹색 이전 단계들(앰버, 오렌지)의 미숙함(아직 진화하지 않음)으로 인한 배려의 부재를 그들이 의도한 억압과 혼동하지 않는 일이다. 윌버가 책에서 들었던 비유는 5살 아이의 미숙함을 범죄라고 정의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앰버와 오렌지들이 세상을 억압했기 때문에 녹색이 숨어있던 것이 아니라, 녹색이 아직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기에 녹색의 능력이 과거에 발현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몰랐던 녹색은 앰버와 오렌지를 자신의 적으로 삼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표현하든 표현하지 않든) 싫어하고 무시했다.


>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 '한심한 무리들'의 반격

그리고 녹색에게 성난 앰버와 오렌지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왠지 가르치려 들고, 나를 무시하는 듯한 녹색을 앰버와 오렌지는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이것이 대략 어떤 느낌인지 여러분도 알 거라 믿는다. 힐러리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 중 일부를 '한심한 무리들'이라 말했고, 한국에서 진보라 불리는 그룹도 태극기부대나 일베로 불리는 보수 성향의 그룹을 비슷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로써 폭넓은 반녹색장(Anti-Green)이 형성되었고, 진화의 거대한 흐름은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로 (모든 색을 포함하는) 스스로를 교정하는 중이다.


켄 윌버가 찾은 성장의 원리는 초월이 아닌 포월(포함하며 초월)이고, 반드시 이전 단계를 온전히 이루어야 다음 단계로 건강하게 간다. 하지만 현재 앰버와 오렌지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녹색의 공격을 받아 불건강한 상태에 있으며, 부서진 녹색이 이들과 끝없이 대립하면서 둘로 갈라진 나라들(미국, 한국, …)이 생겨났다. 과연 우리는 이 방식을 통해 더 나은 시대로 진화할 수 있을까.

> 건강한 녹색으로 가는 2가지 길

책에서는 물론 아니라고 답한다. 우리의 진정한 진화는 녹색의 광기나 앰버&오렌지의 민족주의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점은 앰버와 오렌지가 없으면 녹색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나의 해석과 요약으로 작성되었으나, 해결책에 이르러서는 정확한 전달을 위해 본문을 직접 인용하는 편이 낫겠다.


[건강한 녹색으로 가는 첫 번째 길] "녹색은 줄곧 비정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과격하게 처신해왔다. (중략) 그 첫째가는 증상은, 앰버색과 오렌지색은 물론이요, 녹색이 아닌 것이라면 뭐든지 비난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녹색은 존재와 앎의 각 수준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인간의 전반적인 성장과 발달에 꼭 필요한 단계들인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p172-173)

"트럼프의 당선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 행동은 바로 모든 성인들에게서 발견되는 주요한 발달 단계들(앰버, 오렌지, 녹색 등) 간의 마음 열기,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더 다정한 포용이다."(p174)


믿기지 않고 어쩌면 원치 않겠지만, 녹색은 앰버와 오렌지와 부서진 녹색까지 모두를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색들이 아닌 녹색이 이 일을 '먼저' 해야 하는 이유는 그중에 가장 진화한 것이 녹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 끌어안음이 다른 그룹의 요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아니다. 인간적인 이해연민따뜻한 마음, 그리고 아래 묘사되는 진정한 리더십이 녹색에게 추천하는 포용의 모습이다.

진실이 보이지 않는 시대의 리더십


"사실 첨단(=현재 시대에는 주로 녹색)이 수행해야만 하는 과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효과적인 교육의 틀을 정하는 것에 더해 실질적인 리더십을 제공해주는 일이다. (중략) 진정한 리더십은 진실도 없고 방향도 없고 가치도 없는 세상을 정면으로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히 존재한다. 진실은 바로 이 방향에 있다.' 그리고 그런 리더십은 눈부시도록 참되고 매혹적인 것이어서 불확실한 미래에 믿을 만한 길을 제공해주고, 수많은 사람의 기운을 북돋워줘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p175)


나는 이 리더십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끼고 직감적으로 따랐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정확히 이러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뿌옇게 흐렸던 시야가 조금은 밝아지는 느낌이다. 혼란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갈 길이 보인다. 이 리더들을 따라 함께 걷거나, 나 스스로 그 진실의 방향을 찾아 앞장서는 것이다.

아직 건강한 녹색으로 가는 두 번째 길에 대한 이야기가 남았다. 하지만 이걸 소개하려면 약간의 추가적인 설명(성장의 위계, 터콰이어 단계 등)이 필요하기에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사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넘치는 지식이 아니라 삶에서 얻는 소중한 지혜, 날카로운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나머지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거나, 저를 만났을 때 물어보시면 기억나는 만큼 답해드리겠다.


끝으로, 켄 윌버의 결론에 가까운 말을 2019년의 한국에 전한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요약과 소감이, 머리보다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통합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판단하는 자세로서 허용받는 것은 오로지 '연민' 하나뿐이다. 하지만 망가진 녹색이 학계와 언론계와 연예계와 진보적인 정계에서 열심히 과시해온 것은 바로 연민과 배려와 이해심의 결여다. (중략) 우리의 변함없는 논점은 사람들의 반이 다른 반을 미워할 때 우리는 하나의 나라로 전진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p222, p233)

p.s. 저의 생김새와 방식으로,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 생각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소셜커뮤니티랩(대표), 다른 하나는 Wisdom 2.0 Korea(운영매니저)입니다. 어떤 일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저에게 연락 주시고 함께해요.


> 커뮤니티 문화기획사 '소셜커뮤니티랩' 블로그

> 새로운 이웃의 실험, 소셜커뮤니티랩 '피플쉐이크' 1기 모집(2019.10.9.시작 & 상시 모집)

> 우리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축제, Wisdom 2.0 Korea 페이스북 / 유튜브 / 홈페이지

Thanks to Ken Wilber! :)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 2019년 학술대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