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경준 May 26. 2016

큰 고모

2016년 5월 26일의 기록

제 큰 고모는 자녀가 넷 있습니다. 나이가 저희 형제들과 비슷비슷해서 어렸을 때는 자주 어울려 놀았죠. 큰 고모부는 참 좋은 분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웃어주시고 잘 놀아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사람이 좋은 탓이었는지 하늘이 고모부를 일찍 데려가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으니 삼십 칠팔년 전이고 그 집 아이들 역시 아직 초등학교, 중학교 때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큰 고모부는 술을 너무 좋아하셨던 이유로 간이 나빠져서 돌아가신 겁니다.


큰 고모부가 돌아가시자 젊은 나이에 한참 많이 먹고 학비 많이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 넷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고모는 전주 남부시장 안에 조그맣고 허름한 콩나물국밥집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모는 독해지기 시작했죠. 시장통에서 여자 혼자 국밥집을 하려니 독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거기다 아이 넷을 혼자 지켜야했으니까요. 큰 고모는 인상이 사나웠습니다. 술주정하는 손님들, 농을 치는 손님들에게 서슴없이 욕을 퍼붓고 버럭하는 건 다반사였습니다. 그런데도 손맛이 좋았던 터라 손님들은 늘기 시작했고 급기야 새벽과 아침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손님들은 단골이 되어 계속 고모의 가게를 들락거렸고 전주 남부시장의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콩나물국밥집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이 되었습니다. 참 신기하죠. 고모가 욕하는 걸 일부러 들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손님이 많아진 대신 큰 고모 다리는 항상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음식을 하다보니 다리에 무리가 온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결국 무릎 수술을 하시게 됐죠.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한 두번 고모 가게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무서운 분이어서 말도 쉽게 붙이지 못할 때였지만 큰 고모가 말아주는 콩나물국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남부시장식'이라고 말하는 콩나물국밥과는 약간 달라서 주문을 하면 매콤한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계란 후라이를 국밥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어른이 된 후 유명하다는 콩나물국밥집 어디를 가보아도 그 맛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고모네 식구들은 시장 안, 가게 바로 앞에 방을 얻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큰 고모댁에 가서 누룽지를 가져오라고 종종 심부름을 시키곤 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큰 솥에서 긁어낸 거대한 누룽지가 검은 봉지에 담겨서 방 한쪽 벽에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만큼 밥을 하는 양이 많았던 겁니다. 갈 때마다 양 손 가득 누룽지 봉지를 들고 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아마도 사십 대 초반에 과부가 됐을 고모는 일흔 살이 될 때까지 국밥집을 운영하셨습니다. 몇 천원짜리 국밥을 팔아서 아이들 넷을 모두 대학에 보냈죠. 국밥집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자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다니던 고모의 큰 아들, 그러니까 큰 형은 고모에게 가게를 물려달라고 여러 번 청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모는 가게를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생은 자신으로 족하고 자식들은 좀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청년 둘이 찾아와 고모에게 가게를 파실 수 없겠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가게를 파시면 청년들이 열심히 일해서 가게를 더 키워보겠노라고 한 겁니다. 고모는 본인 나이도 있고 청년들의 뜻이 기특하기도 해서 큰 욕심내지 않고 단돈 1억 원에 가게를 파셨습니다. 전국적인 유명세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금액이었죠. 전주 남부시장에서 큰 고모가 운영하시던 그 허름한 국밥집이 바로 지금은 전국에 수 백개 매장을 가지고 있는 '현대옥'입니다.


그렇게 큰 고모는 새로운 젊은 부자를 탄생시키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현대옥 매장 한 곳에서 점심으로 콩나물국밥을 먹었습니다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의 현대옥 국밥 맛은 고모가 운영하시던 때에 비하면 형편 없습니다. 물론 국밥 맛을 비교 평가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ㅋ.


가게를 판 돈으로 큰 고모는 전주한옥마을에 한옥 한 채를 사셨습니다. 가게를 그만둔 뒤로 큰 고모 인상이 달라졌습니다. 얼굴에 항상 있던 그 독기는 다 어디 갔는지 이제는 소녀같은 얼굴을 하고 인생의 여유를 누리며 아마 이 시간 쯤엔 동네 산책을 하고 계시겠네요.  



작가의 이전글 케이파트너스앤글로벌은 어떤 회사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