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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Feb 24. 2020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간은

온 나라가 코로나19 때문에 난리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의 뇌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존 욕구에게 컨트롤 타워를 맡깁니다. 그래서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게 되죠. 마스크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상황이 심각해지면 아예 바깥 출입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방어적인 의사결정으로 인해 손님이 와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오프라인 비즈니스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판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문을 닫는 매장이 속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생존의 희망이 사라진 일부 사업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바깥에 나가 소비를 하라고 이성적인 캠페인을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 인간을 지배하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방어적인 행동은 사실 호모사피엔스 종인 인간을 오늘까지 살아남게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기간은 대략 20만 년 전후에 불과하지만 바이러스는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시점부터 존재해왔습니다. 판데믹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바이러스는 인간을 끊임없이 (인간 입장에서는) ‘공격’해왔고 인간은 바이러스로부터 생존하는 방법을 DNA에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오늘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바이러스와 인간의 관계에서 바꿀 수 없는 세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바이러스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여러 종으로부터 호모사피엔스라는 한 종만을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지만 바이러스는 오히려 다양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종류와 개체 수는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압도적인 수준일 뿐더러 바이러스 한 종류에만도 인간은 너무나 취약합니다. 둘째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인간을 계속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세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국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심리적 공황 단계까지 발전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이러스에 공격당한 사람 모두가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다수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이겨내는 면역력이 있었고 그 중 소수가 바이러스의 공격에 무릎 꿇었으며 다시 그 중 소수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결국 다수는 살아남는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역사를 통찰해보면 인간은 항상 선과 악, 아군과 적군을 구분해왔습니다. ‘적군(enemy)’으로 규정된 존재가 공격해올 경우 인간은 대개 ‘방어’라는 방법을 1순위로 선택했습니다. 방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을 때 그 다음 순위로 선택한 방법은 도망가거나 항복하거나 였습니다. 이렇게 전개된 대개의 경우는 공격 포지션이 승자가 됩니다. 그런데 승자가 패자를 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 승자는 패자를 몰살(멸종)시켰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승자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동화(同化)’입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로마가 그랬습니다. 로마는 자발적이고 전략적으로 동화를 선택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된 제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비자발적인 동화의 사례도 존재합니다. 가까운 사례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 대륙의 수 천년 역사 중 대륙 전체를 유일하게 통일했던 세력은 청나라 하나뿐입니다. 이 청나라는 우리와 뿌리가 같은 흉노족으로 중국 대륙 토착민족인 한족과는 달랐습니다. 그 청나라는 불과 200년만에 사라졌고 중국은 다시 한족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흉노족은 모두 중국에 동화되면서 흡수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한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근본적인 한족이 아닙니다. 오늘날 중국의 저력은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모든 이민족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통합시켜버린데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희생의 속도와 범위를 통제하는 것이 인간이 구축할 수 있는 1차 방어선일 뿐입니다. 이 방어선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방어선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인류는 오랜 기간의 학습을 통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 현재의 의료 과학은 치료제를 반드시 개발해냅니다. 그러나 치료제가 나온다 하더라도 바이러스를 근본적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전쟁의 결론은 동화의 또 다른 이름인 ‘공생(共生)’이 될 것입니다.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 인간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인간 집단인 인류는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살아남았습니다. 바이러스를 극복한 인간의 전략은 놀랍게도 자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8%가 바이러스로부터 온 것입니다. 결론이 이렇게 자명하다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 바이러스를 우리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러스와의 공생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인간에게 또다른 희망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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