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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Mar 01. 2020

그 많은 액셀러레이터는 다 어디에 있을까

2019년, 정부가 액셀러레이터를 제도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후 채 3년이 되지 않아 중기벤처부에 등록된 액셀러레이터만 200개를 넘어섰다. 2018년 말 까지만 해도 100개 정도였던 것이 불과 1년만에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 수치를 보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 작은 나라에 액셀러레이터가 200개나 필요할까? 200개나 되는 액셀러레이터는 다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단기간에 액셀러레이터가 왜 이렇게 많아진 것일까?


마지막 질문에는 의외로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정부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부분의 사업에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는 질(Quality)보다 양(Quantity)이다. 무조건 성공을 보고해야 하는 대한민국 공공의 현실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그래서 창업 지원의 영역에서도 계속 숫자를 늘린다. 창업지원 공간도 늘리고, 벤처 투자금도 늘리고, 액셀러레이터의 숫자도 늘린다. 물론 창업기업의 숫자도 늘린다. 그리고 유니콘 스타트업의 숫자도 늘리겠다고 한다. 


유니콘 스타트업이란 기업가치가 1조원에 도달한 스타트업을 말한다. 중기벤처부는 2020년 연두 업무보고에서 유니콘 스타트업을 20개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그것도 내년까지 조기 달성하겠다고 한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게 붕어빵 찍어내는 일도 아니고 프로그래밍하면 그대로 결과가 나오는 일도 아닌데 이런 목표를 세우는 게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싶다. 정부가 나서서 버블을 만들겠다는 것도 아닐 텐데. 정부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이런 정책을 펼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일이 창업의 저변을 넓히고 기업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물론 당분간은 양적인 증가에 목표를 두었다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실력이 있는 곳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곳들은 자연도태 되게 하는 시장논리에 맡길 것이다. 액셀러레이터에 앞서 벤처캐피탈 업계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방식도 동일했다. 벤처캐피탈이 하나의 산업으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정부는 설립 자본금 기준을 완화하고 설립 방법도 다양하게 허용하고 있다. 다만 자본의 독립성은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해보인다. 아직까지도 벤처 펀드 재원의 50% 전후를 정부가 감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액셀러레이터 숫자가 단기간에 빠르게 늘어난 또 하나의 이유는 용역 사업에 있다. 대한민국에 왠만한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이라면 너도나도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안 하면 마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액셀러레이팅을 직접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외주업체를 선정해 용역을 맡긴다. 적게는 수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 규모의 용역 사업이 많다 보니 기회다 싶어 떴다방처럼 생겨난 액셀러레이터도 상당할 거라 본다. 올해 액셀러레이터는 더 많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증가세인데 정부가 기름을 붓는 정책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으로 올해 7월부터는 액셀러레이터도 벤처 펀드를 결성할 수 있게 되면서 보다 쉽게 벤처 펀드를 결성하려고 하는 곳들이 상당수 액셀러레이터로 등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액셀러레이팅의 품질이 올라가는 게 아닌데 걱정이다. 



올해의 관전 포인트 


정부가 주도하는 창업지원 정책은 숫자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앞에서 했는데 올해 지켜볼 수 있는 숫자는 세 가지가 될 것 같다. 첫째는 앞에서도 언급한 유니콘 스타트업의 숫자다. 두 번째는 벤처 투자 규모다. 2019년 국내 벤처투자액은 4조 2777억원으로 사상 최초로 4조원을 돌파했으며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세 번째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숫자가 연도별 창업기업(신설법인) 수다. 2008년 신설법인의 수는 5만 855개로 2000년의 6만 1456개에도 못 미치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러던 것이 2008년을 기점으로 늘어나면서 2018년 신설법인의 수는 102,042개로 불과 10년만에 두 배로 증가한 동시에 사상 최초로 10만 개를 돌파했다. 2019년 신설법인 수는 108,874개로 무려 11년간 한 해도 꺾이지 않고 증가해왔다. 대한민국 경제가 11년 연속 호황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과연 올해도 늘어날까. 신설법인 추이는 창업 활성화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지표가 꺾이게 된다면 어느 언론사에서든 다룰 수밖에 없으니 정부 입장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벤처캐피탈의 위기


매년 벤처투자 규모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이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벤처캐피탈에게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투자 주체의 다변화를 들 수 있다. 벤처투자 관련법이 만들어진 이후 40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사실상 벤처투자 시장을 독점해왔던 벤처캐피탈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10개 기업에 투자하면 1~2개만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장이다. 아무리 포트폴리오 전략을 쓴다 하더라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되는 큰 손 투자자들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벤처 펀드는 정부가 모태펀드를 통해 총액의 대략 50%를 출자해주면서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펀드의 나머지 금액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과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주로 채웠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상황이 바뀌고 있다. 상장 주식에 주로 투자해왔던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사모펀드운용사까지 모두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어 접근조차 하지 않았던 투자기관들이 왜 하이 리스크(High Risk) 시장에 들어온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리스크가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투자 후 성공적인 엑싯 사례가 점점 늘어나면서 대한민국 벤처 투자 시장은 점점 더 매력적인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골드만삭스, 세계 최고의 벤처캐피탈로 평가받는 세콰이어 캐피탈도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를 시작해 점점 그 규모를 늘리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대한민국 창업생태계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 작은 나라에 유니콘 스타트업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창업가들의 퀄리티도 최근 몇 년 사이에 한 단계 ‘점프(jump)’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에서도 느껴진다. 시장에 자본이 넘쳐나면서 밸류에이션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성공적인 엑싯 사례는 계속 나올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신진세력이 그동안 집중해왔던 상장 주식시장이 오히려 더 위험한 투자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언제든 사고 팔 수 있다는 상장 주식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가능성보다 손실을 볼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는 게 대한민국 상장 주식시장의 현재 상황이다. 


벤처캐피탈에게 마냥 좋은 상황만은 아닌 두 번째 이유는 모태펀드의 출자 규모가 커지면서 펀드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많아지지만 모태펀드 외에 대략 50%의 금액을 출자할 수 있는 출자자(LP)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매칭 비율 50%를 감안했을 때 정부 출자금이 5000억이라고 하면 민간으로부터 5000억을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회수 기간까지 감안했을 때 그 5000억은 대략 10년간 묶여있어야 하는 돈이다. 정부 출자금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지금 10년간 묶여있어야 하는 돈 1조원을 끌어와야 한다. 자금을 끌어가려고 하는 경쟁자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 이유로 최근 2~3년 전부터 LP 확보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펀드 결성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펀드 출자 비율을 더 높일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벤처투자 시장에 더 많은 플레이어가 들어오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벤처캐피탈이 사실상 금융업임에도 불구하고 벤처기업 육성에 방점을 둔 정부는 그 관할을 중기벤처부에 두고 있다. 그 외의 모든 금융업을 관리감독하는 금융위원회가 이미 수익성이 검증된 시장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휘하의 수많은 투자기관들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야 하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혜택을 보는 것은 당연히 스타트업이다. 시장에 돈이 많아진다고 해서 투자할 만한 기업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준비된 스타트업에게는 투자자들이 서로 내 돈을 받아달라며 줄을 서고 있다. 그러면서 밸류에이션과 투자금액은 갈수록 커진다. 2019년에만 100억원 이상 투자받은 스타트업이 20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상황이 스타트업에게 유리하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높은 밸류에이션과 큰 금액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어깨에 힘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기대를 많이 받을 때는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면 투자자의 애정은 금방 식기 때문이다.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액셀러레이터의 위기 


지금 상황이 액셀러레이터에게도 기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위기가 동시에 오고 있다. 첫 번째 위기는 액셀러레이터들이 지쳐간다는 것이다. 국내에 액셀러레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한 2010년대 상반기는 환상적인 시기였다. 인지도 있는 액셀러레이터에게 뽑혔다는 것만으로도 벤처캐피탈의 후속 투자와 성공적인 엑싯이 보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장밋빛 환상은 오래 가지 못한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은 많은 에너지 투입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아이디어와 열정은 넘치지만 비즈니스와 경영에 훈련되지 않은 젊은 창업가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이드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고된 일이다. 제대로 하려면 엄청난 체력도, 창업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정신적 스트레스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엑싯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극초기 투자답게 성공적으로 엑싯할 수 있는 확률도 벤처캐피탈보다 현저하게 낮다. 그러니 사명감 없이는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못 된다. 신(god)급 선구안으로 에어비앤비 같은 대박을 발굴해내고 말 몇 마디면 금새 유니콘을 만들 것 같은 기대는 책에서나 나오는 환상이다. 불과 10년만에 대한민국 액셀러레이터는 지쳤다. 


첫 번째만큼 심각한 두 번째 위기는 액셀러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을 얘기하려면 액셀러레이터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정리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액셀러레이터들이 와이컴비네이터 방식을 답습하다보니 액셀러레이팅을 ‘배치(Batch) 프로그램’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근래 들어 인지도 있는 액셀러레이터들에서도 젊은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 창업가를 발굴하고 잘 키워서 성공시키겠다는 환상과 기대를 안고 합류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맨날 프로그램만 돌리고 있더라는 게 떠나는 이유다.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액셀러레이팅을 프로그램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액셀러레이터는 창업가의 멘토이자 가이드이자 함께 뛰는 런닝 메이트다. 프로그램만으로 절대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일이다. 


첫 번째 위기와 두 번째 위기가 만들어내는 현상은 액셀러레이터가 ‘무늬만 액셀러레이터’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지도를 이용해 좋은 팀들을 선발하기는 하지만 정작 스타트업이 필요한 걸 채워주지 못하고 최소한의 프로그램만을 이수하는 형태로 가다보니 ‘액셀러레이터가 싼 밸류로 지분은 많이 가져가면서 도대체 해주는 게 뭐냐’는 얘기가 전년도부터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액셀러레이터를 건너뛰려는 곳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스타트업에게 액셀러레이터가 필요한 건 아니다. 액셀러레이터 없이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곳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좋은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았을 때 훨씬 잘 될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더 많을 것이다.


세 번째 위기는 이제 역사가 10년이 되어가고 200개 이상의 액셀러레이터가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인지도 있는 액셀러레이터는 여전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대 상반기에 등장해 먼저 자리를 잡은 액셀러레이터 외에 근래에 등장한 신성(新星)이 없다. 실력과 사명감을 겸비한 뉴히어로가 등장해야 액셀러레이터 업계도 자극을 받을 텐데 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아쉽게도 액셀러레이터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인 현상으로 그동안 외주 용역에 의존하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점점 내재화되어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아웃소싱을 통해 프로그램을 경험한 대기업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제는 자체적으로 팀을 꾸리고 있다. 잘하는 곳들도 물론 있겠지만 내재화가 쉽지 않을 거라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액셀러레이터는 창업 경험 없이는 하기 어려운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올해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액셀러레이터들은 검증의 도마에 오를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경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왠만한 사업분야는 3년이면 검증에 도마에 오른다. 한 때는 모두가 투자하던 분야였고 투자 안 하면 바보가 될 것 같은데 불과 3년만에 분위기가 바뀌는 게 대한민국이다. 모바일 게임이 그랬고 AI가 그랬고 근래에는 블록체인이 그랬다. 그에 비하면 액셀러레이터는 시간이 오래 걸린 셈이다. 하지만 나는 액셀러레이터들이 다시 힘을 내기를 바란다. 창업생태계를 이끌 수 있는 주체는 액셀러레이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창업생태계는 난공불락 같았던 글로벌 시장에서 이제 겨우 돌파구를 만들고 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잘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액셀러레이터가 더 잘해야 하고 앞서서 뛰어주어야 한다. 잠시 숨고르기 하고 다시 힘을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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