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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Mar 13. 2022

영화 <런던 프라이드>를 보고

다름을 존중하고 연대하기

영국을 여행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영국 할머니를 2번 만난 적 있다.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 하니, 조카가 한국에 있다고 수다를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그날이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첫 번째 수업시간이라 하셨다. 그럼에도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까지 가는 길을 친절히 알려주셨다. 이 길은 지름길이지만 돌아올 때는 이 길이 어두우니 밝은 길로 가라는 말씀도 해주시고.


브라이튼에서 이층 버스를 탔다. 이층 칸에 올라가니 어느 할머니가 자기 내릴 거라고 여기 앉으라 했다. 영국 할머니들은 당당하고 씩씩했다. 지금도 아름다운 영국 풍경과 함께 멋진 할머니들이 떠오른다.




동생 때문에 장애인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인권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는 인권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은 것이다. 장애인에만 인권이 필요한 게 아니다. 다양한 인종에 대한 인권, 여성인권, 어린이 인권, 성소수자 인권까지. 결국 보수적이고 힘을 가진 그룹이 소수이고 다른 특성을 가지거나 물리적 힘이 약한 그룹을 무시하거나 힘으로 탄압하지 말라는 게 인권이다. 있는 그대로 존엄을 존중해달라는 게 인권이다.


외국의 인권 존중 사례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 요새는 왜 우리나라는 그런 인권이 부족한지 그 원인과, 서양은 어떤 역사를 거쳐 현재의 인권을 가지게 되었는지 역사가 궁금해졌다. 특히, 한국 내 인권을 주장하는 그룹을 혐오하는 문화를 알게 된 후, 서양에는 이런 과정이 없었는지까지 궁금해졌다.


물론 서양에도 있었다. 혐오 테러는 아직도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권력을 가진 자가 약자들을 서로 갈라치 게 해 분파를 가르고 힘을 분산시켜왔다 한다. 을들이 똘똘 뭉치면 권력자가 다스리기 힘드니까. 지금도 그런 문화가 남아 있다. 삶이 힘든 젊은 남자들이 시스템 자체를 고칠 생각보다 그들보다 약한 여성이나 장애인을 혐오한다. 왜 여성이나 장애인 복지는 해주고, 우리는 혜택이 없냐고 막내에게 가는 사랑을 부러워하는 첫째 같은 생각으로. 심히 안타깝다. 반면, 국내에도 외국의 인권문화를 알고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문화도 있다. 내 기억에 동생을 데리고 참석한 모임에서 친절했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다음에도 동생 데리고 와달라는 부탁을 했던 사람도 떠오른다. 지금은 과거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섞여 충돌하는 과도기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과거에도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형태로 스트레스를 풀어왔다. 그래서, 가족 내에는 언어폭력의 형태로 드러난다. 내가 어릴 때 듣던 아버지가 엄마를 깎아내리던 말들은 사회에서 다른 아버지들도 쓰는 문구들이었다. 그 문구들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지 않고 써오던 문화들. 이성적으로 판단해 그 문화가 좋지 않으면 멈추고 개선해야 한다. 약자 탓이 아니다. 전체 시스템 탓이다. 어쩌면 숨어 있는 강자들 탓일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새롭게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 노래를 하나 듣게 되었다. <빵과 장미>라는 노래였다. 빵은 인간으로서 생존을 뜻하고, 장미는 문화예술, 존중과 존엄을 뜻한다. 인간은 식량만으로 살 수 없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길 원한다. 그런 바람이 너무나 잘 녹아 있는 노래였다.


자연스럽게 이 노래가 들어 있는 영화 <런던 프라이드>를 보게 되었다.  1980년대 영국 광부들이 장기간 파업을 하게 되었다. 이 뉴스를 본 한 게이 청년이 광부들을 지지하는 모금을 하자는 제안을 게이 커뮤니티에 한다. 광부들이 경찰과 정부에 탄압받으니, 사회와 경찰에 탄압받는 자신들도 같은 약자의 입장이라면서. 길거리 행진을 하며 모금을 해 전국 광부들 노조에 후원하겠다고 전화를 하지만, 게이&레즈비언 모임이라는 걸 안 노조들은 전화를 끊어 버린다. 한 노조에서 할머니가 받았다. 그 할머니는 LGSM(Lesibian and Gay Support Minors)는 모임 이름이 런던의 모임으로 잘 못 듣고 후원을 받겠다고 한다. 광부 노조에서 대표가 오고 처음엔 게이 모임이라 낯설고 이상하게 본다. 하지만, 대화를 해보고 어느새 같은 사람이란 걸 알고 서로 친구가 된다. 게이들의 장점인 춤과 음악을 마초적인 남자들인 광부들에게 가르쳐주고, 서로 그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며 서로를 지지하는 줄거리이다.


이 시위 과정 중에 나오는 노래가 <빵과 장미>이다.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https://youtu.be/P2LYHjnciJc


우리의 삶이 착취당하지 않기를 태어날 때부터 숨이 다하기 전까지
가슴도 몸만큼 허기진답니다 빵과 장미를 함께 주세요
우리는 노래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선조들은 빵을 부르짖었답니다
예술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 그들의 고된 영혼도 알고 있죠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우지만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합니다


다름이 있더라도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이 잘 녹아 있는 가사라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영국 여행에서 만났던 당당하고 씩씩한 할머니들도 생각나고. 남성들이 힘으로 무언가를 일군다면, 부드러움과 따스함으로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파워도 느껴진다.


무엇보다 같은 약자끼리 다르다고 편견을 가지고 멀리 하는 게 아니라, 편견을 내려놓고 서로 친해지는 과정이 눈물겹다. 비장애인 형제로 살아오며 제일 무서운 게 소외와 고립이라는 걸 잘 안다. 그 장벽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서로가 가진 자산을 나누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 영화에서 물론 혐오 테러와 언어폭력도 나온다. 변태라는 말로 놀림을 당하자 게이 모임 사람들은 오히려 그 변태라는 단어를 써버린다. 광부와 변태의 공연이라는 말로. 말로 기죽지 않고 그걸 오히려 극복하겠다는 태도가 배울만 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게 더 재밌다. 나중에 이 영화 등장인물이 자기 개발을 해서 성장하는 근황도 자막으로 알려준다. 서양도 이런 혐오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존종해달라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서 인권이 발전해왔구나를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있는 그대로 당당해지기. 동생과 있는 그대로 행복해지기. 영국 여행에서 봤던 할머니들처럼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를 리뷰한 방구석 1열에 변영주 감독의 말도 인상 깊다.



한국 시스템에 불만 있는 여러분. 여러분의 적은 여러분들의 상대방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누군가에요.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누군가를 혐오하지말고 서로의 불행과 연대하는 순간 행복해질수 있어요.


나부터 혐오와 미움을 내려놓고, 다름을 이해하고 연대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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