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 구례 성당 그리고 화엄사
지리산에 처음 끌린 건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고 나서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던 공지영 작가가 지리산 지인을 만났더니 느슨하게 편안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뭔가 마음의 안식처를 지리산에서 찾았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선 아예 시골집을 사서 하동에 정착한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침이 되면 아무것도 손상 안된 하루가 오고, 섬진강 윤슬(강위로 햇살이 비춰 반짝거리는 모습)에 행복해진다는 문장들이 나를 지리산으로 끌어당겼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자 하고, 무조건 섬진강을 볼 수 있는 코스를 찾았다. 오미~산동 코스가 나왔다. 여기를 걸으려면 구례로 가야 한단다. 둘레길의 가운뎃점 오미마을의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다. 주인장이 둘레길을 세 바퀴나 도신 분이라 한다. 전화를 하니, 지난 여름 섬진강 홍수로 오미~산동 코스가 폐쇄되었다 한다. 일정을 바꿔 방광-오미를 걷기로 한다.
지인에게 구례에 간다 하니 천은사와 화엄사가 보고 싶다고 동행한다 했다. 첫날은 구례시에 가 금요일만 여는 피순대국을 먹기로 했다. 또 다른 동행은 구례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싶다 한다. 둘레길 걷기로 들어가 버리면 구례 성당까지 버스를 타기 힘들어 금요일 저녁에 미사를 보기로 했다. 동행들이 모두 개불릭(개신교+불교+가톨릭)이라고 어떤 종교도 받아들이는 터라 첫날은 천년고찰과 성당을 가기로 했다. 일정 참 희한하다.
천은사는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다. 천은사 앞에 저수지가 있는데, 원앙과 수달이 산다. 절 입구에 다리는 저수지의 윤슬과 어울려 한국의 미를 자랑한다. 늦가을 단풍들은 말라서 색이 퇴색되었지만, 정취는 남아 있다. 우리는 천은사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에 반했다.
저녁에 되어 구례 성당에 갔다. 미사를 보고, 초를 봉헌했다. 도시의 밤과 다르게, 구례의 밤의 어둠은 짙다. 어둠이 짙어 초가 더 밝고 예쁘다. 다른 성당보다 초 크기도 크고, 예쁘다. 이날은 성불도 하고, 예수님의 축복도 받은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화엄사에 갔다. 아무 정보도 없이 인도에서 온 스님이 백제시대 때 만들었다는 것만 알고 갔다. 그 크기와 위엄에 놀라고 말았다. 나중에 정보를 찾아보니 전남 일대 40여 개 암자를 거느린 사찰이라는 것이다. 영조가 세자 시절 연잉군이었을 때, 엄마 숙빈 최 씨는 화엄사내 각황전을 짓는데 도움을 줬다 한다. 정유재란 때 화엄사가 불탔었는데, 재건을 도운 것이다. 2층으로 지은 각황전 안에는 거대한 나무들로 높은 천장을 만들었다. 마치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천장을 보는 듯했다. 모든 종교는 통하나 보다. 각황전 앞에는 당시 심은 홍매화 나무가 있었다. 화엄사 홍매화가 봄에 피면 그리 예쁘다던데, 내년 봄에 엄마를 모시고 오기로 했다.
밤하늘에 검은 실크를 두른 듯 까만 밤에는 숙소에서 편히 잠들었다. 다음날 둘레길 걸을 생각을 하며. 첫날도 참 좋았는데, 그 후는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