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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에 반하다(2)

지리산 둘레길 방광-오미 (방광마을회관~문수저수지)

by 긍정태리

칠흑 같은 밤이 지나니 안개가 낀 아침이 찾아왔다. 우리는 과일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화엄사를 둘러보고, 둘레길의 출발지 방광마을회관을 갔다. 해지기 전, 방광-오미 코스를 다 걸으려면 10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차를 태워준 일행과 아쉽지만, 작별을 구하고 걷기 시작한다.


추수를 끝낸 논 옆을 걷는다. 지리산은 물을 많이 품었다. 천은사와 화엄사 계곡도 있는데, 마을 중간중간에 저수지도 있다. 섬진강 못지않게 저수지 뷰도 멋지다. 갈대길과 양지바른 곳의 무덤들을 지나니 숲이 나오고, 화엄사 입구 음식점 촌이 나온다. 먹고 싶었던 재첩국으로 점심을 먹는다. 가짓수 많은 전라도 반찬은 오늘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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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부지런히 걷는다. 산과 마을이 나온다. 중간에 정자에 앉아 쉰다. 냉장고가 넘어져 있고, 장기알이 굴러다닌다. 농번기에는 여기서 새참도 먹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쉬기도 했겠지만, 지금은 농한기다. 바람이 불어오는 들녘에서 물을 마신다.


걷다 보면 열매가 참 많이 보인다. 다 따지 않은 감과 모과 그리고 석류. 덩굴째 그냥 둔 호박들도 보인다. 밭농사를 좋아하는 우리 엄마 생각이 난다. 지리산은 풍요로워서 사람들이 먹을 것을 다 따고 새와 짐승들을 위해 남겨두었나 보다. 그 넉넉함에 맘이 푸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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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들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 오미마을에 도착했다. 우리가 마을 숙소는 오미마을 뒤편에 있는 문수저수지 근처에 있다. 오르막을 오르니 저수지를 막아 놓은 둑이 보인다. 그 옆을 따라가니 저수 지위에 집을 지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것은 알프스 아니던가! 한참 걸으니 동네 주민인듯한 분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내 옆을 지나간다. 말을 걸어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집이 있냐고 물었다. 길 끝에 있다고 했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서울에서 둘레길을 걸으러 왔다 했다. 이 동네가 단풍이 들면 정말 예쁘다고, 자기가 살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자랑하신다. 그럴만하시다고 했다. 어느덧 대나무 숲으로 길이 나 있고, 그 끝에는 길이 막혀있다.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하니 지나왔단다. 대나무 숲 아래 있는 집이랬다.


다시 돌아가, 아랫길로 내려갔다. 마당이 있고, 주인장이 사는 집 옆에 독채를 우리에게 안내해줬다. 유럽식으로 하얗게 지은 집이 참 예뻤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격자무늬 유리창 밖으로 저수지가 펼쳐진다. 감탄사가 자연스레 나왔다. 올 8월에 오픈했다는 이 게스트 하우스는 유럽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안긴다.


방 한편에 이 집에서 묵은 사람들의 방명록이 있다. 읽어보니 밤에는 별이 보인다 한다. 해가 지니 어제처럼 칠흑 같은 어둠이 밖을 덮는다. 별을 보기 위해 마당으로 나섰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었고, 한편에선 대나무 숲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서울에서는 못 느꼈던 오감이 충족되었다.


사람 머릿속에는 항상 잡생각이 있다. 이걸 멈추려면 어떤 것에 오로지 집중해보라 한다. 여기에선 집중하려 애쓰지 않아도 대자연이 감탄과 집중을 하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명상처럼 머리가 비워진다. 마음이 편해진다. 대자연이 주는 평안함은 여기에서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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