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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에 반하다(4)

구례5일장과 커피공방

by 긍정태리

송정마을에서 잠을 잘 잤다.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은 28일 구례5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황토집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8시 반에 집 앞 길가에 버스가 온다 한다.


"시골버스라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해. 정류장 아니라도 손 들면 세우니까 타고 가. 올라가는 버스 타고 윗마을도 구경해도 되고."


할머니는 딸에게 일러주듯 자세히 말씀해주셨다. 길가에 나가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도 아니고, 사방이 고요했다. 전날 카페 가면서 그 길로 버스가 다닌 걸 봐서 버스가 올 것 같았다. 8시 반이 넘어서 10분 정도 지났나. 작은 마을버스 같은 게 오긴 했다. 버스요금은 천 원. 버스카드가 안 찍힌다. 신용카드라 그런가 보다. 현금을 넣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윗마을로 달려 할머니 몇 분을 싣고 달린다.


섬진강가 대로변으로 드러 섰다. 한 마을에서도 할머니 몇 분이 탔다. 이미 타신 분들과 아는 사이인지, 안부를 묻는다. 어딜 가? 그냥 놀러 가. 인사가 정겹다. 어떤 할머니가 내 앞에 앉는다. 갑자기 뒤를 돌아 나에게 목도리를 내민다. 어제 선물 받으셨는데, 어떻게 매는지 모르겠다고 도와달라 하신다. 첨 보는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편안함이 좋다. 긴 목도리 끝에 일자로 절개선이 나 있고, 여기에 반대편 끝을 넣는 건데, 절개선이 잘 안 보이긴 하다. 잘 매드리고 잘 어울린다 덕담도 해드렸다.


5일장 입구가 보인다. 여기가 5일장이죠? 엉덩이를 들썩이며 물어보니 주민들이 대답한다. 우리들도 내릴 거니까 앉아있으셔. 모두 5일장에서 내리는 분들이다.


5일장에 접어드니 왁자지껄 벌써 물건들이 펼쳐있다. 재밌었던 건, 산 아래 구례인데 아구와 조기 등 생선시장이 엄청 크다는 거다. 산골이라 산나물과 채소만 드시고 살 줄 알았는데, 맛있는 것만 먹는다는 전라도 답다. 한참을 걷다, 단감 한무 데기를 오천 원에 파는 걸 샀다. 무거울까 봐 고르고 골라 작은 사이즈로 샀다. 근처 목월 빵집이 유명해서 검색해보니 이날은 문을 닫았다. 다시 검색해 스콘을 파는 작은 베이커리에 들렸다. 여기도 구례 밀로 빵을 구워 맛있었다. 전주에 갔을 때 커피가 맛있었던 기억이 났다. 여기도 커피가 맛있을 것 같아, 베이커리 젊은 아가씨에게 물어봤다. 커피공방에 가라 일러주었다. 거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첫날 피순대를 먹고 지리산 둘레길 센터에 지도를 사러 갈 때, 보던 곳이다. 길가에 식탁이 있고 강아지도 있어 기억나는 커피집이다. 단감을 둘러메고 커피공방까지 걸어갔다.


아직 10여분 정도 여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커피공방 앞 의자에 앉아 일행이 사 온 사과를 반으로 쪼개 먹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새콤한지. 아마 차를 가져왔으면 다시 오일장에 가서 사과 한 박스를 샀으리라. 그렇게 사과를 먹고 있는데, 주인이 나와 안에서 문을 열어준다. 강아지도 우리를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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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원두커피 있냐고 물어보니 지금 당장은 없다 한다. 커피와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안에서 커피 볶는 소리가 났다. 비엔나커피를 시켰는데, 크림도 그리 달지 않고 커피 뒤끝이 깔끔하고 신선하다. 케이크는 촉촉하고 두툼하고 적당히 달다. 서울서도 먹기 힘든 맛이다. 명상음악인 듯 고요하고, 인테리어도 생각보다 좋다.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온다. 여기가 진짜 구례의 멋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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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다 볶아질 때까지 멍 때리며 앉아 있었다. 강아지가 갑자기 문을 긁으면 나가라 문도 열어줬다. 볼일을 보고 들어와 우리와 같이 노는 강아지. 머무는 시간이 평화롭고 행복했다.


커피가 다 볶아졌다. 맛보라고 작은 잔에 따로 담아 주었다. 신선하고 깔끔하다.


천천히 걸어 황토방 할머니가 추천해준 순댓국집에 갔다. 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밖에서 비가 쏟아졌다.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았다. 5일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순댓국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일행이 전날 산 막걸리를 먹고 싶어 했다. 주인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니 그러라고 했다. 추가로 파김치 좀 더 달라고 하니 드시라고 줬다.


비는 오고 파김치에 먹는 막걸리도 일품이다. 이런 여유 정말 오랜만이야.


어느덧 빗줄기는 줄어들고, 터미널까지 여유 있게 걸어왔다. 단감을 들고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할아버지 한 분이 말을 붙이신다.


"단감 싱싱하네. 오늘 딴 거 같아. 알도 굵고."


네, 싱싱해서 샀어요. 작은 거라도 칭찬해주는 인심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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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왔지만, 영혼은 구례에 남아 있다. 직장 사람들에게 단감을 깎아주고, 커피를 내려줬다. 다들 너무 맛있다고 했다. 구례에 보고픈 게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일행과 다시 가자고 약속했다. 다음엔 구례구역에 내려 가보련다. 쌍산재도 가고, 목월빵집도 가고, 5일장을 지날 때 봤던 생선구이집과 맥주창고, 빈티지 오디오를 틀어주는 음악카페도 가보련다. 가고 싶고 쉬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게 이렇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지 처음 알았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에 본 구절처럼 지리산이 나에게 큰 빽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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