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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Mar 08. 2023

빵과 장미가 없으면 졸혼이나 이혼이 낫습니다

여성의 날에 졸혼을 권하는 기사를 읽다

https://omn.kr/22zcr


요새 기사를 보면 그 프로그램을 안 봐도 내용을 알 수 있어 좋다. 자폐장애 가진 자녀를 키운 엄마의 이야기는 관심이 저절로 간다. 우리 집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폐장애를 가진 두 아들을 엄마는 열심히 키웠다. 반면, 아버지는 회피했고, 본인의 취미생활만 했고, 외면했다. 아들이 사춘기가 되어 2차 성징이 일어나서 목욕하기 힘들었는데, 이런 일은 아버지가 도와줘야 하는데도 외면했다.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수고했다, 감사했다는 말 한마디라도 부인에게 부탁하니 못하겠다고 한다. 이런 부부에서 오은영은 졸혼이나 이혼을 고려해 보라고 한다.


이 부부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부모님 이야기 같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동생의 장애를 이해 못 했다. 성실했지만, 밖에서는 호인이었고, 집안에서는 폭군이었다. 화가 나면 가라앉지 않아 몇 박 며칠을 화를 내곤 하셨다. 난 차를 산 후 식구들을 데리고 카페에 피신해 있던 날도 있었다. 이사를 갈때 짐정리를 하거나 가구를 나르지 않고 도망다녔고, 남동생 목욕을 시켜준 적이 없었던건 회피형 아버지가 도망다니며 산 인행의 흔적이었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어린 시절을 물어봤다. 냉정한 할머니, 잘못하면 옷을 벗겨 한겨울에 내보낸 기억에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고 엄마가 전해주셨다. 고모들도 할머니의 냉정함에 몸서리쳤고, 친엄마인데도 거리를 두었다. 할아버지는 먼바다를 가는 마도로스였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이나 자녀에 관심이 없었다. 먼바다를 그리워하며 술만 많이 드셨다 한다. 회피형 성격은 할아버지를 닮은 듯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버지는 세상을 불신하셔서 폐쇄적이었고, 문제가 발생하면 불안해 화를 냈다. 정작 문제는 엄마가 다 해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나 졸혼을 안 한 엄마가 존경스럽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부잣집 막내딸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많이 해서, 예를 들면 봄이 오면 나물을 캐서 어른들께 대접하는 등 엄마의  할머니는 철없는 오빠들에게 "너는 판이 똥이나 빨아라!"라는 말을 하셨다 한다. (울 엄마 어릴 때 애칭이 판이다. 본명이 판선.) 이름을 맘에 안 들어하자 엄마의 아버지는 좋은 이름으로 선하를 지어와 온 동네 떡을 돌리며 우리 딸 이름이 선하가 되었다고 공표하셨다 한다. 장날이 되면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데리고 장에 가며 귀여운 막내딸이라 자랑했다 한다. 외할아버지는 어업을 하셨는데, 사업수완이 좋아 동네의 은행 역할을 할 정도로 잘 살았다 한다. 머슴도 몇 명 거느리고. 이런 사랑 속에서 자란 엄마라도 인생의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내면의 사랑받은 자원으로 낙천성과 유머를 가지고 내내 사셨다.


오늘은 여성의 날이다. 생존을 상징하는 빵과 인권을 상징하는 장미. 빵과 장미의 노래를 엄마에게 바친다. 퇴근할 때 장미 한 다발 사드려야겠다. 빵은 어제 스타벅스 블루베리파이케이크를 사드렸는데, 맛있다고 다 드셨기 때문이다.


오은영이 졸혼이나 이혼을 권한 이유는 뭘까? 인간다운 대접, 가사노동과 육아의 가치를 존중하는 배려인 인권을 전혀 모르는 화석처럼 굳어진 가부장적 남편에게 희망을 못 봤기 때문일 것이다. 빵이 있어도 장미가 없다면 졸혼이나 이혼을 권유하고 싶다. 난 아예 장미를 줄 것 같은 남자를 찾기 힘들고, 나도 한국의 결혼제도에 안 맞는 사람이라 싱글로 살고 있는데, 자유를 누리고 있어서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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