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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Mar 07. 2023

60이 되면 영국 브라이튼 어학연수 갈 계획 세우다

영어와 갱년기의 나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 1학년 첫 영어수업시간. Hello,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의 상투적인 인사말을 배우고 설레어하던 시간. 하굣길에 친구를 만나 배운 인사말을 건네던 나 말이다. 그냥 영어가 좋았다. 그렇다고 영어시험점수가 좋았던 건 아니다. 느리고, 아둔해서 늦게 배웠던 나는 고등학교 들어간 겨울방학을 탱자 놀면서 보낸다. 3월이 되어 학교에 가니, 다른 친구들은 처음 들어본 문법책을 겨울방학 때 이미 떼었다는 것이다. 첫째였고, 지독히도 내성적이었던 나는 그런 공부 문화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엄마에게 울면서 이야기하니 옆집에 가서 고등학생 오빠에게 정보를 얻어왔다. 맨투맨이나 성문종합영어 책으로 문법을 공부하라고. 


그렇게 느리게 공부했지만, 점수는 안 나왔지만, 영어가 싫지 않았다. 점수하고 반비례하게 영어가 좋았다. 대학 때 교내 어학연수원에 여름방학코스를 등록한 적 있었다. 당시 돈이 많이 없어 그 코스만 들었지만, 재밌었다. 같은 반 학생이 그 코스를 이수 후, 아버지덕에 뉴욕에 어학연수 갈 거란 말을 듣고 한없이 부러웠다. 그래서, 취직 후 여동생이 뉴질랜드로 어학연수 갈 때 돈을 빌려줬다.


그러다, 우연히 미국 뮤지션 리처드 용재 오닐을 알게 되고, 팬레터를 쓰기 위해 다시 영어를 꺼내 들었다. 인간극장에서 그가 김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팬레터에 "어제 내가 김치를 담갔어. 네가 내 옆집에 살면 나눠줬을 거야."라고 김치 사진과 함께 메일을 보냈다. 놀랍게도 답장이 왔다. 


"내 콘서트에 올 거면 김치 좀 가져다 줄래?"


7월 말 한여름 콘서트에 김치를 가져오라니, 그 말이 설레었다.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고, 그 케이크 아이스박스에 엄마와 같이 담근 김치를 담았다. 당시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공연을 보기 전에, 물품보관소에 김치박스를 맡겼다. 공연 후 팬사인회를 찍으려고 대기 중이었던 인간극장 피디가 물품보관소 직원에서 김치를 가져온 팬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거다. 공연을 다 보고 느리게 나온 나는 팬사인회 줄 맨 뒤에 서 있었다. 저 멀리서 "김치 가져오신 분!" 하며 나를 찾고 있는 피디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 피디는 내가 김치를 전달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 했다. 줄이 길어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나는 덜덜 떨면서 용재를 만나할 영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My mother and I made it last night. I guess you don't like hot Kimchi. So, I made it less hot."


아직도 그때 외웠던 대사가 기억나는 건 그때 영어를 했던 내 모습이 인간극장에 찍혔고,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https://youtu.be/mob-SFn07Dc

2004년 인간극장 용재오닐 서울에 오다 편에서 내가 나온 장면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의 영어사랑의 불꽃은 다시 지펴졌고, 그 후에 영어카페에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녔다. 너무 적게 공부하나 걱정도 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루틴을 유지하니 영어가 늘었다. 그 후, 단계를 높여 영어스피치클럽 토스트 마스터즈로 옮겼다. 고려대 안에 있는 클럽에 다녔는데, 이곳 친구들의 인품이 좋아 오래 다닐 수 있었다. 나처럼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총 10번의 영어스피치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약 40프로의 멤버만  10번의 스피치를 마쳤단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클럽인데, 인증서도 국제우편으로 날아왔다. 그 후, 10번의 스피치를 준비하며 쌓인 스트레스가 있어 2018년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러다, 올해 들어 다시 영어바람이 불었다. 스페인 산티아고도 혼자 걷고 싶었다.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자 우울해지면서 젊었을 때 못해본 것들에 대해 서러움이 올라왔다. 그중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어학연수를 못 가본 것. 영국 여행 갔을 때 혼자서 재밌게 다녔던 것이 생각났다. 옥스퍼드 쪽을 검색하다, 휴양지였던 바다도 가까웠던 브라이튼이 생각났다. 세븐 시스터즈를 보러 혼자 기차를 타고 갔던 곳이다. 검색해 보니 그곳에서도 어학연수를 많이 하고, 런던에 비해 물가가 싸다고 한다. 체질상 남쪽 바닷가가 잘 맞는 나는 브라이튼을 마음에 품었다. 지금은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내야 해서 당장 못 떠나지만, 평생 사느라 수고한 나에게 브라이튼 어학연수를 기필코 시켜주리라 마음먹었다. 그 꿈을 안고 다시 토스트 마스터즈 멤버에 가입했다. 새로운 스피치를 준비하면서, 여기가 브라이튼이고 친구들이 옥스퍼드라고 생각해야겠다. 


하얀색으로 산뜻한 브라이튼 역


예전에 써 놓았던 브라이튼 여행기 링크를 남겨본다.


https://dobucketlist.tistory.com/entry/%EB%9F%B0%EB%8D%98%EC%97%AC%ED%96%89%EB%B8%8C%EB%9D%BC%EC%9D%B4%ED%8A%BC%EA%B3%BC-%EC%84%B8%EB%B8%90%EC%8B%9C%EC%8A%A4%ED%84%B0%EC%A6%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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