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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Mar 03. 2023

장비빨로 사는 노년과 중년

아이패드와 갤럭시가 늙어감의 보조수단이 되다

나 어릴 때 할머니들 보면 이해 안 될 때가 있었다. 금목걸이에, 빨간 립스틱에, 알록달록한 옷 입으시는 이유 말이다. 그런데, 내가 52세가 되고, 엄마가 78세가 되자 이해가 되었다. 나이 들면 왠지 보상심리가 생긴다. 젊을 때 못해봤던걸 해보고 싶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서럽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읽으니 노인이 되는 건 아기나 중도장애인이 되는 거라 한다. 그러니 아기에겐 장난감이 필요하고, 중도장애인에게 보조기구가 필요하다. 생전 물욕 없던 엄마와 내가 물욕이 생기다.


줌 수업을 많이 듣는 나는 어느 날 노트북이 줌 화면을 소화 못 시키는 이상징후를 발견했다. 줌 프로그램이 업데이트가 된 것이다. IT기기를 살 때마다 저렴이를 골랐던 나는 노트북 구입 시 전시된 것 중 가장 염가를 골랐다. 그랬더니 이 놈이 시대를 못 따라간 것이다. 그런데, 갱년기라 그런지 왠지 서글펐다. 시대를 못 따라가는 노트북이 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IT쪽에서 일하는 터라 빠르게 발달하는 개발트렌드를 쫒아가기 바빴다. 그랬더니 생긴 서글픔인가보다. 그 서글픔을 달래고자 평생 한 번도 안 사본 아이패드 최신형을 질렀다.


아이패드 에어 파이브 제네레이션


이걸로 줌만 하려다가 판매원에게 물어보니 속도가 빨라서 동영상 편집도 되고 유튜브도 할 수 있단다. 내친김에 동영상 편집도 배워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근데 전원을 켜자마자 제일 많이 하는 건 넷플릭스 감상이다. 예전에 안 봤던 별에서  그대를 정주행 하고, 더 글로리는 대사가 재밌어 2번 보고, 일타스캔들도 꼬박 챙겨본다. 좋은 영상을 봐야 좋은 동영상 편집도 하지.. 내적 핑계 되면서 말이다.





어느 날, 엄마가 지방에 모임이 있다고 코레일로 기차표를 예약해 달란다. 코레일톡 앱을 써서 예약했더니 속도가 느린 게 느껴진다. 이번 기회에 핸드폰 바꾸자고 했다. 최근에 써본 갤럭시 화면 큰 놈이 써보니 좋길래 같은 기종으로 당근마켓에서 검색했다. 주말에 피곤해 검색까지만 하고 뒹굴고 있었더니, 엄마가 내 방을 들락거리며 언제 핸드폰 사 오냐고 물어보신다. 그동안 다른 할머니들 보며 큰 핸드폰 당신도 가지고 싶었다고 고해성사 하시는 엄마. 내 말을 듣고 기뻤단다. 그간 모아둔 돈을 줄테니 얼른 사오란다. 하나를 골라 사고 싶다고 당근톡을 보내니, 상대는 노쇼 방지 위해 예약금을 받겠단다. 당시 월말 저녁마다 일이 있어 3일 후에 받으러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예약금을 지르고, 드디어 어제 받아왔다.


저녁 늦게 도착해, 유심을 갈아 끼워드렸다. 처음에 깔고 싶은 앱이 카카오톡, 두 번째가 카카오 택시. 사람들과 교류하고 택시 타고 가는 걸 좋아하는 활동적인 엄마 성격이 드러난다. 졸려서 오늘은 이만 할게 하고 내 방에 들어가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가 또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네이놈 블로그를 쓰시는데 로그인을 못하겠다 하신다. 로그인 아이디를 빼곡히 적어놓은 수첩을 내민다. 영어를 대문자로 써놓고, 로그인도 대문자로 하신 것이다. 실제 아이디는 소문자인데.. 소문자로 로그인해드렸다.


오늘은 엄마가 점심 약속이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만날 사람 전화번호 새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냐고 물어봤더니, 어젯밤 잠도 안 자고 옛날 핸드폰을 보고 입력해 두셨단다. 역시 기계에 능한 울 엄마.


역시 나이 들면 장비빨로 산다.


추신 ) 어제 새 핸드폰에 전화번호 저장하는 기능을 알려드리다 배꼽을 뺐다. [키패드]라는 글자를 눌러 번호를 찍으라고 했다. 그런데, 자꾸 [카페트]를 찾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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