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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Apr 24. 2023

나의 통영 이해기

허세와 갈등의 통영을 이해하려는 여행

2021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코로나가 한참인 터라 최소한의 문상으로 장례를 치르고, 통영 할아버지 무덤 앞 소나무 아래 화장한 유해를 묻어드렸다. 그곳은 예전 공동묘지 터라 한다. 지금은 그 앞에 한마음선원 통영지원이 들어섰다. 불교신자인 엄마는 아버지가 묻힌 소나무 아래 불경을 외우는 선원이 들어온 것을 기뻐하셨다.


2022년 작년엔 코로나로 아버지 기일에 통영에 못 갔다. 올해까지 못 가면 섭섭해하실 것 같아, 엄마랑 남동생이랑 시간을 냈다. 남동생이 그사이 운전이 늘어 통영까지 운전을 해준단다. 이렇게 자가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통영으로 내려가는 토요일엔 하루종일 비가 왔다. 보통은 친척집에서 자곤 했는데, 이번엔 내가 호텔과 펜션에서 자자고 했다. 매번 얼굴을 보면 거친 말로 상처를 주는 삼촌과 고모를 피하고 싶었다. 수십 년간 엄마는 통영에 다녀오면 삼촌이 한 말에 상처를 받아 며칠씩 힘들어하시곤 했다. 내가 굳이 그분들을 볼 의무도 책임도 없으니 호젓하고 깨끗한 곳에 묵어보자 했다. 통영과 거제의 경계선에 있는 신 거제대교 앞에 호텔을 예약했다.


통영은 그간 관광도시로 떴다. 동양의 나폴리라고도 불리며, 주변 사람들이 통영을 관광지로 추켜세웠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제사상밖에 기억이 나질 않았다. 관광지로서의 통영을 보고 싶었다. 사촌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다. 사촌도 왜 고모와 삼촌을 보기 싫어하는지 금방 이해했다. 수십 년간 겪은 공통된 애로사항이다.


통영에 도착하니 비가 많이 와 바로 호텔로 갔다. 엄마를 좋아하는 사촌들과 사촌의 형부가 나와 저녁을 사줬다. 그 사이 대형카페도 들어서고 좋은 건물들도 들어선 통영은 어릴 적 기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촌도 숙소로 잡은 호텔의 오션뷰가 좋다고 인정해 주었다. 다음날 선산 앞에서 보자 하고 헤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여니 처음 보는 뷰가 펼쳐졌다. 물안개가 자욱하고, 바다 위를 아침 일찍 일하러 가는 배가 건너가고 있었다. 물 앞에서 사람들은 낭만적이 된다고 했던가. 물안개 뒤에 숨은 거제도 신비로워 보였다. 아침 뷰도 즐기고 조식도 먹고 여유 있게 약속장소로 갔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선원 초입에 등이 달려 있었다. 못 보던 일주문도 생기고. 마치 묘소로 가는 길이 절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가족들과 아버지 묘소로 갔다. 근처에 할아버지 묘소부터 가서 엄마는 우리들이 왔다고 고했다. 근처에 할머니도 수목장으로 모셔 인사를 드렸다. 그다음이 아버지 차례였다. 평생 명당을 꿈꾸던 당신이었으니 그곳에서 평안하라는 엄마의 말씀이 인상 깊었다. 저 멀리 담 넘어 선원의 건물이 이 자리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때로는 불경과 목탁소리가 담 넘어 들려올 것 같았다.


그다음은 통영시 외곽 서쪽 편에 있는 엄마의 고향 도산면으로 갔다. 엄마의 친구들은 오랜만에 왔다고 엄마를 만나고 싶어 했다. 친구들 만나기 좋아하는 성격이 나는 엄마를 닮았구나. 엄마가 친구들을 만나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국민학교 남자동창은 도산면에서 큰 어장을 해서 돈을 많이 번다했다. 그곳에 생긴 큰 카페에서 보자고, 만나면 굴을 주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네르하라고 루프탑까지 있는 3층짜리 큰 카페였다. 바로 엄마의 친구를 찾기는 힘들어 엄마가 전화를 했다.


"문지기에게 물어봐라."


우리 같으면 어디로 오라고 바로 할 텐데, 당신이 지역의 유지라는 걸 알리고 싶었나 보다. 카페 입구에서 차들이 오면 주차관리를 하시는 분께 물어봤다. 2층에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그곳에 가니 70대 엄마 나잇대로 보이는 분이 계시다. 난 인사를 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커피 달라하신다. 1층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올라오는 시스템인데, 시골분이시라 그러신가 보다. 제가 시켜 드릴게요. 하고 1층에 가서 주문해 가져다 드렸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그 친구분 굴 주겠다고 했는데, 막상 보니 까놓은 게 없어 그냥 왔단다.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자랑했는데, 엄마가 그런 것에 놀래지 않자 머쓱한지 그냥 가셨다고. 허세만 잔뜩 부리는 친구라고 하신다. 난 왠지 그 모습에서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통영의 바다는 거칠다. 그 거친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려면 허세와 자랑의 모습으로 포장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별것도 없이 허세를 떠는 아버지 모습이 이해 안 됐다. 난 서울태생이고, 진정성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성격이라 더 그랬다. 그런데, 아버지 비슷하게 말하는 통영 사람들을 보니 그게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려운 시기였고, 직면하기보다는 회피하고 눌러야 하는 감정도 많았고, 그걸 덮기 위한 허풍이 필요했고.


난 엄마 친구가 시트콤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고 했다. 왠지 재밌었다. 이제는 그런 모습들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엄마에게 힘든 소리를 하는 삼촌과 고모는 언젠가는 받아들일 만한 힘이 생기겠지. 용수스님의 글에서 내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를 찾는다.


괴팍한 사람은 아픈 사람이에요. 자기 집착이 강하고 각별히 아프고 어디에 가든 환영받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따뜻함을 받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아픈데 그런 사람은 좀 더 아픈 거예요.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좀 더 마음을 내서 따뜻하게 대해 보세요. 사랑이 각별히 필요해요.

해가 되는 관계를 감당할 수 없다면 끊거나 멀리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유독한 관계(toxic relationship)는 멀리하되 친절하게 멀리하세요. 그렇지만 차별하고 쫓아내는 것은 공평하지 않아요. 너무 싫어서 인연을 끊으면 그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또 인연이 와요. 왜냐면 자기 마음이 해결이 안 되어서 그런 거예요. 한 사람과 싸우면 그런 사람이 배가 되어서 끝없이 찾아와요. 그게 인과법칙이에요. 그래서 누구와도 싸우면 안 돼요. 사실 해결되지 않은 것은 자기 마음뿐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바르게 봐야 해요.

- 용수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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