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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May 06. 2023

너도 생각이 있구나

화섭 씨랑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


난 촌스럽다. 서울이 고향이고, 강남이 직장인데, 최근 내린 결론은 난 촌스러운 사람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쌍문동은 흙길이 있었고, 집 밖을 나가면 논밭이 있었다. 봄에는 소가 논을 갈던 풍경을 봤고, 흙 위에서 놀았다. 땅따먹기와 두꺼비집 짓기 놀이가 그리운 사람이다. 시멘트로 쌍문동 골목이 온통 덮이는 날, 아쉬워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농사를 잘 짓고 몸을 잘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도서관과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그러니, 나이 들면 도서관과 카페가 있는 작은 지방 소도시에서 지내고 싶다. 농사를 못 지으니 작은 공부방을 하거나, 영어를 좋아하니 에어비앤비 등 관광가이드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섭 씨가 걱정되었다. 변화를 싫어하는 자폐의 특성상 지방으로 가는 걸 거부하면 어쩌지. 평소 서울 밖에 여행도 거절하는 친구인데. 평일과 휴일 루틴이 완성된 친구인데 그걸 깨면 어쩌지. 요새 지방도시를 가도 화섭 씨가 좋아하는 서점, 복권방, 카페가 있긴 하지만. 나 혼자 고민하다 대화를 해봤다.


지난번, 우이천 5킬로 운동 후 스타벅스에 갔다. 카페 가는 걸 좋아하는 화섭 씨랑 대화하려면 이런 방식이 좋다. 운동하면 마음도 열리고, 기분도 좋아지니까. 지금은 아니고 먼 미래에 지방에 가서 살고 싶은데, 너는 어때? 그 질문을 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나왔다.


“욕실이 2개 있는 3층짜리 집이었으면 좋겠어.”


“ 왜 3층이 좋아?”


“내 전용 층과 욕실이 있었으면 해.”


평소 목욕과 샤워를 좋아하는 화섭 씨는 욕실이 한 개인 우리 집에 불편했던 거다. 나랑 출근시간이 겹칠 때, 욕실을 편하게 못 쓰니까. 그리고 집에선 옷을 많이 안 입고 지내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못하는 것도 아쉬웠던 거고. 아, 화섭 씨가 원하는 건 어느 동네에 사는 거보다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지낼 사적인 공간이 필요한 거구나. 화섭 씨의 행복은 집 밖에 있는 서점, 복권방, 카페에도 있지만, 집안에서 마음 편히 목욕하고 옷을 덜 입고 돌아다니는 거구나.


“그래, 알았어. 생각해 보자. 먼 미래에.”


우리 가족이 먼 미래에 화섭 씨가 원하는 전용 방과 욕실이 있는 집으로 갈 수 있을지. 하지만, 일단 꿈은 꿔본다. 방향을 잡고 앞으로 가다 보면 길이 생길 테니. 난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흙길을 밟으며 살 날을 꿈꿔본다. 꿈을 꾸자.


라일락 잎파리로 물들였던 손수건. 난 명품보다 이런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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