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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May 24. 2024

무리뉴 감독에게 코칭을 배운다

나랑 사주 한 글자가 다른 명감독 무리뉴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즐겨 들었던 팟캐스트가 있다. 바로 라디오 좌파 명리. 이른바 라좌명이라고 부르는 이것을 듣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다. 해외 유학한 학생이나 이민자까지도 들었다. 강헌 샘께서 재미나게, 때론 감동 깊게 명리를 가르쳐주시거나 사주를 풀어주시면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으로 위로를 해 주셨다. 같이 채널을 진행하던 지산선생님, 수기피디님과 죽돌님까지 화기애애 합이 좋아 지금도 종방 된 그 방송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다.


나도 그 방송을 무척 열심히 들었다. 그때 라좌명 게시판이 있었다. 2019년 기사일주 편에 내 사연이 소개된 후, 그 게시판에서 나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20대부터 게시판 글쓰기는, 그것도 눈에 띄게 글쓰기는 잘해와서, 라좌명에서도 내 닉네임 <긍정태리>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 라좌명 애청자들이 모이는 오픈채팅방이 있다. 초창기에 참여했다. 지금은 다른 일들로 바빠 잠시 나와있다. 지난 휴일, 시간이 좀 있던 터라 아주 오랜만에 근 3년 만에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봤다.


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를 환영해 줬다. 어떤 사람은 나도 알지만, 내가 모르는 분도 나를 아는 경우가 꽤 있다. 그중 처음 뵙는 분이 갑자기 무리뉴 축구감독이 나와 사주 한 글자만 다르다는 것이다. 공인의 사주이니 공개한다.



나는 임자년이고. 이 감독은 임인년일 뿐 계축월, 기사일, 정묘시는 동일하다. 성별이 달라 대운이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물론 임인년이 되면 내 사주와 많이 달라진다. 인목은 수탕기호라고 한 개만 있어도, 큰 물을 흡수할 정도로 거대한 양의 기운이다. 나보다 좀 더 양기운이 많을 것이고 좀 더 조직적일 것이다. 임자년인 나는 자수가 축토까지 영향을 줘 수 기운이 강해진다. 이 감독보다 좀 더 생각이 많고, 때로는 수기운(재성, 사람들이나 돈, 번잡한 욕망)에 휘둘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조세 무리뉴 감독의 나무위키에서 나랑 닮은 점을 찾아봤다.

커리어에 교사와 통역가로 활동한 게 눈에 들어왔다. 기초적인 걸 가르치는 교사는 기토와 잘 맞는다. 나도 야학교사, 영어과외교사, IT개발 후 사용자교육 등을 했다. 통역가도 비슷하다. 마라톤 자원봉사를 한적 있는데 외국인 러너에게 통역하는걸 사람들이 자꾸 시켜 중학교 수준의 문장으로 통역했던 기억난다. 팬클럽에서도 뮤지션에서 영어로 말 거는 걸 두려워 안 해, 그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카페 다니며 영어회화를 공부했다. 직업 통역가는 아니지만, 필요하면 중간에서 통역해 준 일은 종종 있다. 이게 수가 있는 기토가 잘하는 역할인가 보다.


그 후, 무리뉴 감독에 대한 평을 찾아봤다. 전체적인 판을 읽고(편재), 전문스포츠교육(편인)을 받은 후 방어적인(토)이지만, 이기는 축구를 한다는 것. 무명팀을 우승시키는 명장이라는 것.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평은 선수들이 아버지처럼 존경한다는 것이다. 어떤 코칭이 선수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는지 궁금했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한 게으론 선수를 코치하는 게 나온다. 감탄할만한 말들이 많았다.



먼저, 인간적으로 이 감독이 이 선수를 좋아하고 잠재력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한다. 선수보다 한 인간으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신뢰를 준다. 하지만, 아버지나 삼촌정도는 아니고 코치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점을 명확히 말한다. 이런 신뢰외 애정을 바탕으로 한 후,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최근 컨디션이 업다운이 있다. 이 원인이 뭔지 나는 모른다. 그 이유를 선수자신은 알 거 아니냐. 훈련장에선 연습하지만, 퇴근 후 파티보이일 수도 있고. 그건 스스로 알 거 아니냐.

나도 한때는 20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50대다. 시간 금방 간다.(Time flies)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본인을 돌아봐라. 남이 시켜 움직이지 말고, 내면에서 나를 움직여라.


이 대화법에 감탄했다. 감독이라는 권한으로 명령이 아니라, 선수 스스로 동기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원인을 찾고 스스로 바꿔보라고 충고한다. 자발적 노력이 되도록 격려한다. 남이 시켜서 하면 눈치 보다, 남이 없으면 안 할 수 있지만, 내 스스로 시켜서 하면 양심껏 하기 때문에 오래간다. 그걸 직접적인 언어로 따뜻하게 전달한 것이다.


왜 그를 스페셜 원(special one)이라 하는지 알 것 같다. 나도 그와 사주 한 글자만 디르니 그처럼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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