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하고 알아가면 다루기 쉬워진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샴쌍둥이처럼 붙어다닌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분노, 원망, 슬픔보다 더 괴로운 감정이다. 모든 문제의 책임을 자기자신에게 돌리며 생존해온 흔적이다.
이제 수치심과 죄책감이라는 휴유증을 끝내야 한다. 수치심과 죄책감을 내면화된 사람은 일상 문제에도 심각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되고,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병리적 상태로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대대로 이어질 수 있다.
<가족의 발견> 중에서
며칠전, 나의 말실수로 갈등이 빚어졌다. 어떻게 마무리 되었지만, 그 후 떠오르는 수많은 감정들 때문에 괴로웠다. 바로 수치심과 죄책감이었다.
말을 멈추고, 읽기 시작한 가족의 발견 책에서 윗구절을 발견했다. 마치 나에게는 구원의 동앗줄 같았다. 어릴때부터 양심바른 나는 죄책감을 잘 느끼고, 죄책감의 쌍둥이 수치심을 느꼈다. 그 감정들은 사람들과 나를 분리시키고 끊임없는 자책의 무한궤도로 들어가게 한다. 내가 셀프로 외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몸이 시릴 정도로 추운 외로움이다.
돌아보면, 우리 아버지도 수치심이 많으셨다. 그걸 숨기기 위해 화를 내셨지만, 결국 그 수치심은 관대하지 못해 용서를 안하는 마음에서 시작 되었다.
내가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그러니 남에게도 친절하거나 관대하지 않는 태도가 가끔씩 툭툭 나오곤 했다. 결국 자기관대와 자기용서로 나를 죄책감과 수치심의 감옥에서 꺼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결심했다. 평생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행복은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만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일상에 널러 있는게 행복이다. 그걸 못 보는건 내안의 힘든 감정이라는 검은 안경 때문이다. 그 검은 안경을 벗어 던지려면 그 안경을 직면해야 한다.
다음에 직면하고픈 감정은 외로움이다. 깊어가는 겨울에 나자신에게 오로지 집중하기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