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그저 평범한, 보통의 아침이었다.
아이 아침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유치원 셔틀버스를 타러 가기 전 잠시 만화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유치원 갈 준비는 다 했으니 이제 곧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이가 이상했다.
티비를 보고 있던 아이가 위로 눈을 치켜 뜬 채 경련을 하고 있었다.
그땐 그게 경련인지도 몰랐다.
처음 겪는 상황에 울부짖으며 119에 전화부터 걸었다.
아이가 이상하다고, 살려달라고, 제발 좀 빨리 와달라고...
119와 통화중에 아이의 경련이 멈췄고,
아이는 기절하듯 잠을 자려 했다.
나는 멍한 아이의 아이 눈을 보며 이름을 부르고,
엄마라고, 제발 엄마라고 불러보라고 했지만
아이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정말 빠른 시간 내에 119가 도착했고 나는 아이를 안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해 아이가 경련을 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황이 없던 그때, 그 이틀 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주말 아침, 잠시 일을 하느라 아이에게 케이크를 먹으며 만화를 보고 있으라고 했는데...
잠시 뒤 아이에게 가보니 아이가 머리에 케이크 크림을 잔뜩 묻힌 채
졸려 하며 정신을 못 차린 적이 있었던 것이다.
왜 머리에 크림을 잔뜩 묻혔냐는 내 질문에도 아이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모르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지만 그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졸렸나... 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도 같은 상황을 아이 혼자 겪지 않았나 싶었다.
응급실에 있던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는데...
아닐 수도 있지만 열도 없이 경련을 한 것을 보니 뇌전증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의사에게 되물었다.
"네? 뇌전증이 뭔가요?"
의사는 더 조심스럽게 옛날에는 '간질'이라고 불렸던 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주위의 모든 세계가 우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그 단어가 주는 공포감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다음 머릿속엔 왜? 내 아이가 왜?
잔병치레는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크게 아픈 것 없이 잘 컸는데...
왜???
대체 왜??? 가 가득했다.
아이는 그렇게 3일 동안 입원해 여러 검사를 받았다.
CT, MRI, 뇌파검사...
MRI는 아이가 세 차례의 약물이 들어갔지만 잠들지 못해 실패했고,
뇌파검사 때 겨우 잠들어 할 수 있었는데...
결과는 CT도, 뇌파검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담당 교수는 원래 두 번째 경련이면 항경련제 약을 투여하는 게 맞지만...
내가 첫번째 상황을 본 것이 아니라 의심되는 정황만 있었기 때문에
일단 약은 먹지 말고 지켜보자 했다.
또 경련을 일으키면 그땐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감기에 걸리듯 뇌가 감기에 걸렸다 생각해라,
항경련제 약을 시작하면 최소 2년을 먹여야 하지만,
감기에 낫는 기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거라 생각해라, 하며 안심시켜 주었지만...
하루하루가 불안으로 가득했다.
한순간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혹시 자는 사이에 일어날까, 아이의 작은 뒤척임에도 벌떡 일어나 살폈다.
아이가 조금만 이상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고,
유치원에 보내고서도 혹시 친구들이랑 놀다 경련을 일으키지 않을까, 좌불안석이었다.
집안일을 하느라 내 시선에 아이가 보이지 않으면 계속 아이 이름을 부르며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고...
괜찮을 거야. 그냥 커가는 과정에서 한두 번 일어난 일일 거야... 괜찮아. 괜찮아...
다독여보았지만...
8일 뒤... 모든 게 무너졌다.
유치원을 가려고 준비하던 그때...
아이는 똑같은 경련을 일으켰다.
그렇게 아이는 결국 뇌전증 판정을 받았고, 뇌전증과의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