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찾아온 그 녀석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
아이가 갑작스럽게 경련을 일으키고 뇌전증 판정을 받은 뒤
한동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왜?? 였다.
잔병치레는 있었지만 6살까지 발달에 큰 문제 없이 커왔는데...
왜일까.
왜 갑자기 이렇게 예고도 없이 그 녀석이 찾아온 걸까?
아기 때 침대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서?
3, 4살쯤 갑자기 찾아온 알러지로 2년 가까이 항히스타민제를 장기간 복용한 것 때문에?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내가 너무 부실하게 먹었나?
혼자 아무리 생각해봤자 답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첫번째 찍은 CT와 뇌파검사에서 아무 이유도 없었다.
살면서 '뇌전증'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기사를 찾아보니 아무 원인 없이 일어나는 특발성 뇌전증은 소아 100명 중 3~5명에게 나타난다고 했다.
그 중 한 명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내 아이가 되버린 것이다.
11일 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경련까지 세 번의 경련이 있었다.
병원에서는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오르필'이라는 약을 처방받아 왔고
어떤 약인지 찾아볼수록 무서운 부작용이 가득했다.
간 손상
구토, 복통
탈모
무력증
체중 감소 혹은 증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처음 약을 먹이던 그때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정말 먹이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먹기 싫어하는 아이를 붙잡고 먹였던 그때.
누군가 가슴을 옥죄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약으로 모든 게 멈춰지겠지...
매일 1분 1초 불안에 떨지 않고
다시 예전처럼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했는데...
아이가 경련하던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맞는 약을 찾는 게 정말... 정말로 쉽지 않았다.
1년 가까이 우리의 시간은 거기서 그대로 멈춰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