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병원에서도 아이와 맞는 약 찾는 건 역시나 쉽지 않았다.
60번, 40번, 30번...
움찔거리는 경련 증상이 조금 줄어드나 싶다가도, 다시 늘고 줄기를 반복했다.
그때.
한국에서 소아 뇌전증으로는 가장 유명하다는 교수님의 진료를 받아볼 기회가 생겼다.
그 교수님이 봉사활동하는 병원에 대기를 걸어놓은지 4개월 만에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 병원에서 뇌파검사를 다시 받고, 기다림 끝에 드디어 교수님을 만났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받았던 모든 뇌파검사, 아이의 경련 동영상을 보시더니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고는 잠시 뒤...
"뇌파검사... 많이 안 좋은 거 아시죠...?"
하시고는 어떻게 치료 받겠냐? 자기에게 치료를 받아보겠냐 물으셨다.
퇴임을 2년 앞두고 계신 분이라 신규환자를 받지 않는다고 들었던 나는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옮긴 병원에서도 이 약 저 약 추가하며 치료를 이어나갔지만 호전되기는커녕 악화만 될 뿐이었다.
멀쩡했던 보행능력, 운동신경, 학습인지까지 떨어졌다.
걷고 뛰던 아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계단을 내려가지 못해 안고 내려가야 했고,
2시간 넘게 붙잡고 숫자 8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어도 도무지 쓰지를 못했다.
뇌전증이 발병하고 1년 동안 경련을 잡기는커녕 온갖 약 부작용으로 아이는 뒷걸음질만 쳤다.
어느 새 아이가 먹는 약은 네 가지로 늘어났고 독한 약에 취해 하루종일 잠만 잤다.
병원에선 케톤식이를 해보자고 했다.
케톤식이는 에너지로 쓰이는 탄수화물을 극도로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려 지방을 에너지로 쓰게 하는 치료법이었다.
정말이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던 치료법이었다.
일곱 살 짜리 아이가 좋아하는 빵,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음료수 등의 간식은 물론 밥과 과일까지, 밀가루와 당이 든 음식들은 전부 제한해야 하고, 아이가 먹는 것은 무조건 다 계량해서 먹여야 하며, 급식은 물론 외식까지 전부 할 수 없다.
아이는 입맛이 매우 까다로웠고, 입이 짧았다.
기름을 마시다시피해야 하는 케톤식이를 아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 또한 자신이 없었다.
다른 약을 더 써보면 안 되냐 물었지만 쓸 수 있는 약은 다 써보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 정도로 약을 썼는데 경련을 잡지 못했다면, 다른 약들도 마찬가지라 했다.
아이 아빠도 해보지 않고 후회하지 말고, 일단 3개월만 해보자 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절대 피하고만 싶었던 힘든 케톤식이 치료를 시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