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모험가의 국토대장정 열세 번째 이야기(나주-영암)

낯섬과 두려움이 주는 성장

by 서툰 모험가

홍어의 묵직한 여운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열세 번째 오늘의 일정을 짜는 게 제일 고민스러웠다.

원래 목적은 영산포 모텔에서 영암의 과수원 모텔까지였다.

거리가 약 30km 정도 된다.

10km 더 떨어진 초원의 집까지만 가면 남은 일정이 수월할 것 같았지만 아직 40km는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pass

결국 과수원 모텔까지만 가서 남은 일정의 에너지를 보충하자는 식으로 마음을 먹었다.

거리가 짧은 만큼 아침 05:40분부터 상쾌하게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내 인생에 있어서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오늘 하루에만 온탕과 냉탕을 몇 번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ㅠㅠ

첫 번째 위기가 닥쳤다.

네비가 안내해 주는 방향이 심상치 않았지만 네비를 100%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적 신뢰를 하고 따른다.

지도가 알려준 대로 그대로 따라왔지만 길이 있어야 할 곳에 엄청 넓은 흙 밭만 있는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다시 돌아가기가 너무 애매했다.

오는 길 자체도 거친 풀 숲을 헤쳐 왔기 때문이다.

한참을 뒤돌아보고 옆을 봤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ㅠㅜ

저 멀리 한 농부 분이 부지런히 일하고 계신다.

배에 숨을 불어넣고 세상 가장 큰 소리로(농부님과 나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

“선생님~~ 여기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다행히 대답을 해주신다.

“위로 위로 ”

설마 했던 그 넓은 흙밭을 가로질러가야 한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길을 찾아냈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더 큰 불 상사가 나에게 올지 전혀 몰랐다.

내려오자마자 버스정류장에서 쉬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번 여정에서 가장 관심 갖고 따뜻하게 대화를 나눈 어르신을 만났다.

나이는 70대 정도로 보이셨는데 지나가다가 나를 보더니 멈춰 서시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나를 존중해 주고 내가 걷는 이 길을 응원해 주시는 어른이었다.

이 어른 분의 관심 때문에 길을 잃고 당황했던 기억은 싹 잊어버리고 다시 새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감사해서 앉아있었던 정류장과 어르신의 뒷모습만이라도 사진에 담아두었다.

누군가 내 인생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바로 오늘이다.

영암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하였지만 큰 공포를 심겨주기도 하였다.

나는 네비를 믿고 걸었을 뿐인데...

나를 이상한 산으로 들어가게 했고 그 산을 관통하게 하였다.

처음 입구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여러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가득 차 있던 무덤이 나를 반겨주었다.

느낌이 거시기했지만 오고 가며 무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무시하고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 가는데도 정상적인 길이 나오지가 않는다.

오히려 더 깊고 울창한 산속으로 나를 인도하는 것이다.

어두침침하고 무수히 많은 잡초와 풀들이 가득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관리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여기만 잘 벗어나면 길이 나올 거야”하면서 산을 헤쳐 나갔다.

한참을 헤쳐 나가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 같은 나무 앞에 섰다.

반가운 마음에 작은 나무를 발로 밟고 가지로 길을 여는 순간 수많은 무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어디에도 길은 없다.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네비를 붙잡고 어떻게 해서든 현재 나의 위치를 맞추며 길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온갖 무성한 잡초와 나무들이 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순간 영화 “곡성” “파묘”의 장면 들까지 오버랩되면서 공포와 닭살이 나를 뒤덮었다.

아내한테 전화를 하는데 받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곳을 헤쳐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헤쳐 나왔다.

나와서 아내한테 전화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정말 무서웠고 나 혼자 영원히 고립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나는 이 공포와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또 걸었다.

영암... 나에겐 애증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ㅠㅠ

이 글을 쓰면서도 거짓말 조금 보태서 목뒤로 닭살이 10번 정도 섰다.

저 방향으로 기어 나왔다.(지금 생각해 보니 관리가 안 된 산인 것 같다.)

놀란 가슴을 뒤로하고,

유일하게 찾아낸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과 간식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공포로 인하여 중간중간 생각이 끊긴다.

처음 생각한 목적지 “과수원 모텔”에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다.

지금 이대로 모텔에 들어가면 더 혼란스럽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복잡할 때는 더 몸을 피곤하게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과수원 모텔을 뒤로하고 12km 떨어진 “초원의 집”이라는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오래된 느티나무가 많이 보인다.

오래된 느티나무 앞에서 제사상 같은 것을 차려 놓고 하얀 소복 입고 기도 하는 사람도 보인다.

자꾸 길 잃은 산속이 떠올라서 더 빨리 걸었다.

숙소 근처에는 밥집이 없어서 오후 3시쯤에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선택지는 없기에 식당 한 곳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비빔밥 한 종류뿐이었기에 돌솥비빔밥을 시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동네 맛집이었다.

전라도 음식이 이런 건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반찬들 간이 좋았고 맛있었다.

반찬 하나 안 남기고 다 먹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결국 숙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자리가 있었고 들어가자마자 빨래도 못하고 씻고 바로 누웠다.

내일 입을 티가 없는데도 빨지 않고 잤다는 것은 그만큼 오늘 하루의 여정이 심적으로 육적으로 힘들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글을 쓴 날은 바로 다음날이다.

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그 장소와 시간에서의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그 길이 막히고 두려움이 몰려올 때에 주님을 찾거나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핸드폰의 네비 어플만 붙잡고 있던 내 모습 때문이다.

그 순간에 핸드폰을 버리고 의지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니 부끄러웠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공포가 몰려온 그 순간에 오로지 핸드폰만을 100% 의지하고 신뢰하고 있었다.(핸드폰이 나를 그 길로 이끌었음에도)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내가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줄 때 그 시험을 이겨낼지 무너질지 모르고 주셨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안다.

다만 그 시험을 통해 “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말만 번지르르하게 던 신앙인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

나의 연약함을 대면하게 해 주셔서...

나는 여전히 그분이 필요하고 그분이 없으면 안 된다.

시간이 지나니 공포보다는 감사함이 고백되는 인생 최고의 하루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오늘의 결산(누적 397km)

이동경로: 전남 나주시 나주 명성 리버텔 - 전남 영암군 초원의 집(초원 모텔)

이동거리: 42km

총비용:57,500원

1)간식:11,500원(월평리 아메리카노,편의점)

2)저녁:11,000원(돌솥비빔밥/인지식당)

3)숙소:35,000원(초원의집)

서툰 모험가의 국토 대장정 열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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