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음"이 가진 의미
처음 40km의 경험은 적은 성취감을 주었지만 내 몸에는 생채기를 더하였다.
발목과 아킬레스건 쪽이 상당히 안 좋은 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오늘도 걸어야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해남의 “동일 모텔”이다.
이제 슬슬 해남이라는 글자가 나를 환영해 주기 시작한다.
이상하리만큼 어깨가 아프다.
전날 오래 걸었으니라고 생각하며 걷지만 어깨 쪽이 유난히 더 불편한 것이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20분 만에 반사경의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방이 열려있던 것이었다.
다행히 안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도 안 빠졌지만 너무 웃픈 기억이었다.
이 녀석과의 기싸움이 엄청났다.
백 미터 정도를 내 앞에서 짖어대면서 내 길을 막아서는 것이다.
나도 양보할 수가 없었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 꼬리를 내리더니 옆으로 도망가더라
아~~ 험난한 일정의 시작이다.
드디어 해남에 입성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해남이 평안한 도시인 것 같다.
걷는 내내 안정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러한 안정감과 평안함이 여행객에게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 생각이 들던 찰나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오르막길!!
그래도 한참을 올라갔더니 멋진 전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참을 더 가고 나서 중간 기착지인 이마트 24에 도착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카페가 없기에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을 하기로 계획하였다.
땅끝마을까지 걷는 많은 분들이 이곳을 들렸던 것 같다.
여사장님이 물어보는 질문들이 고수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다시 신발끈을 묶는데 안에 있던 사장님이 자유시간 하나를 가져다주셨다.
너무나 감사한 응원이었다.
참 많은 응원 덕분에 완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전날의 숙소에는 정수기가 없었다.
기본 제공되는 생수 2병 중 1병은 전날 다 마셨기에 물이 부족하였다.
편의점에서 사려다가 바로 옆에 파출소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염치 불고하고 파출소에 들어가서 인사드리고 물 좀 채워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안에 계신 두 분의 경찰 분께서 너무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다.
물뿐만 아니라 시원한 음료수도 하나 챙겨주시면 이번 여정에 대하여 많은 것을 묻고 답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마트 24 사장님과 경찰분들 덕분에 해남은 나에게 아주 따뜻한 도시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두 시간 정도를 더 걷고 나서 해남 군청 근처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오늘 여정에서 꼭 들려야 하는 코스였다.
발가락을 책임져주던 종이테이프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여정 내내 인정사정없이 테이프를 발가락에 감아 댔기 때문에 벌써 3통을 다 쓰고 이제 4통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물집이 하나도 안 잡혔다.)
딱 하루 남아서 테이핑을 안 해도 될 것 같지만 안 하면 물집이 잡힐 것 같아 구입한다.
다행히 해남 군청 근처에는 약국이 많이 있었다.
간 김에 고구마 빵도 사고 잠깐 쉬며 에너지를 회복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해남군청에서부터 숙소까지의 길이 너무 불편했다.
갓 길도 좁고, 정비되지 않은 도로가 많아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걸었다.
그래도 결국 시작을 하면, 발을 내디뎌보면 어떤 열매든 열매를 맺기 때문에 긴장된 걸음이었지만 숙소에 잘 도착했다.
지금까지 14일을 걸었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날이 오늘이었다.
그래서 숙소가 더욱 반가웠고,
도착하고 나서 1시간 동안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다.
하루의 여정이 꼭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지나가는 풍경 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걷는데 급급했지만 재미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나의 개인적인 삶은 평범 그 자체이다.
특별한 것 하나 없이 일상을 살아내는 것!
오늘 내 여정에 특별함은 없었지만 평범하게 가장 나답게 창의적이게 보낸 최고의 날이었다.
오늘의 결산(누적 429.7km)
이동경로: 전남 영암군 초원의 집 - 전남 해남군 동일 모텔
이동거리: 32.7km
총비용:63,200원
1)간식:10,500원(이마트24,고구마빵)
2)저녁:5,700원(편의점 김밥)
3)기타:2,000원(종이테이프)
4)숙소: 45,000원(동일 모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