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지만 괜찮아
국토 대장정 마지막날이다.
그리 큰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하루의 루틴대로 마지막까지 발가락에 테이핑을 야무지게 해 준다.
이틀 전 좀 무리를 했는지 아킬레스건이 부은 느낌이 있다.
노파심에 아킬레스건 쪽도 테이핑을 칭칭 감고 땅끝으로 향한다.
걷는 내내 해남이 가진 정서가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고요하고 평안하다
이 고요함을 넘어서고 버티는 자가 완주할 수 있다
15일쯤 돼 보니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처음에는 허리가 그렇게 아프더니 발바닥 어깨 등 안 아픈 데가 없다.
그래도 오늘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픈 것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걷다 보니 바닥에 땅끝 이정표가 보인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장소를 만난다.
평상시 보고 들었다면 그렇게 까지 큰 감흥이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유독 지나가며 본 이 문구가 내 오장육부를 찌르며 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서툰 자연인”
어떤 장소인지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서툴다"는 표현이 그렇게 마음을 아리게 한다.
아마도 내가 너무 서툴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사람으로 그리고 목사, 친구, 아빠, 남편으로 뭐 하나 “잘 해내는 게” 없기 서툰 내 인생
나는 서툰 사람이다.
그 서툰 사람이 이렇게 걷고 있다.
생각해 보니 서툰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완주”에 큰 의미를 두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인정한다.
그러나 잘 해내지 못하는 나 같은 “서툰 사람”도 많이 있다.
나는 서툴지만 내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과도하리만큼 큰 책임감을 가지고 완주 혹은 마무리해내려고 몸부림친다.
그게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그런데 솔직히 서툰 초라함이 나는 너무 싫었다.
나도 남들처럼 잘 해내고 싶고, 닮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언제나 인색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서툰 자연인”이라는 워딩에서 서툴지만 괜찮아라는 스스로의 위로를 얻었다.
지난 15일간 무엇을 위해서 내가 걸어왔는가?
솔직히 큰 기대를 하거나 답을 찾으려 이 길을 걷은 아니다.
그런데 답 비슷한 것을 찾은 것 같다.
서툰 내 인생도 괜찮은 인생이고,
서툰 내 인생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인생 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서툴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자
마지막이라서 그런 걸까
유독 더 큰 힘이 생겨서 카페 오픈시간보다 50분 일찍 도착했다.
50분을 기다린 후에 커피를 마시기에는 오늘 하루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앉아서 잠시 앉아서 간식만 먹기로 한다.
전날 사다 놓았던 고구마 빵과 경찰 분이 챙겨주신 에너지 음료이다.
고구마 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비록 고구마 빵을 사갈 순 없지만 집에 올라갈 때 해남 버스터미널에서 비슷한 고구마 빵을 사다 주고 싶은 맛이었다.
이제 먹고 다시 힘을 내서 걸어보자.
마지막 해남 가는 길은 소소한 기쁨이 있던 여정이다.
지도상에는 편의점이 없어서 힘들게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편의점 표지판이 보이는 것이다.
너무 신이 나서 달려갔다.
처음에는 폐업한 곳인 줄 알고 실망해서 지나가던 차에 옆에 숨겨져 있던 편의점을 발견했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주 기쁨이 넘치며 조금 더 즐겁게 완주할 수 있는 만남이었다.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이젠 바닷길로 가면 되는 길이 나오는 것이다.
두근두근 대었다.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조금 더 긴장해야 한다.
길이 좁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될 때, 마지막으로 치달을 때 조금 더 신경 쓰고 긴장해야 함을 삶을 통해서 체득했다.
그래~~ 기분은 기분대로 가져가되 조금만 더 신경 쓰고 걷자!!
나는 여행을 다녀본 적이 많이 없다.
그런데 오늘 송호 해수욕장을 지나다 보니 아이들하고 해남은 꼭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정이 나에게 준 선물 중 또 하나는 가족 들고 함께 가고 싶은 것을 스스로 발견했다는 것이다.
공주의 공산성을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었고,
송호해수욕장에서 아이들과 해수욕을 하고 싶었다.
송호 해수욕장! 정말 멋진 곳이다.
사람들이 엄청 힘들어하던 구간에 드디어 돌입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전날 아침재 고개도 그렇고 그동안 몇 번씩 이런 오르막을 통해 걷다 보니 오늘의 오르막도 괜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르막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마음이지만 숨은 가파르게 차 올랐다.
아마도 고지가 곧 내 손에 잡힐 것 같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왕 15일을 걸어온 거 땅끝 전망대와 땅끝탑까지는 걸어서 올라가고 싶었다.
국토대장정 출발 전에 가족들이 만들어 준 곰인형이 있다.
곰인형에 안경수건으로 앞치마를 만들어서 가족 모두의 이름으로 “아빠 사랑”을 써주었다.
마지막 탑에서는 이 곰인형과 함께 하고 싶었다.
올라가서 가족 톡방에 이렇게 사진과 카톡을 보냈다.
“몸은 나 혼자 땅끝에 와 있지만, 이곳에 우리 가족 모두가 와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가족의 응원으로 용환이가, 아빠가, 남편이 대한민국 땅 끝까지 무사히 왔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합니다.”
땅끝 전망대를 마지막으로 핸드폰과 시계의 어플을 종료하였다.
여정이 일단락된 것이다.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도착한 숙소는 상당히 맘에 든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여인숙도 맘에 들 것 같다^^
“땅끝비치” 사장님 참 재밌고 좋으신 분이다.
내가 인터넷으로 여러 군데 식당을 검색해 봤지만 도통 어디를 가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장님께 여쭤보니 로컬 분들이 선호하는 곳 두 군데를 알려 주셨다.
친히 문이 열었나 전화까지 해주시면서 도와주셨다
참고로 소개해준 곳(보물섬 횟집)에서 먹은 물회는 정말 맛있었다.
내가 가족들하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강원도에 가서 먹는 유명한 물회집이 있는데 거기 보다도 맛있게 느껴졌다.
대부분 음식적이 2인 분 이상 주문이라서 2인분의 물회를 주문했다.
다 못 먹을 줄 알았으나 국물만 남기고 다 먹었다.
드디어 15일간의 여정이 끝이 났다.
중간중간 가족이 사무치게 보고 싶고 몸도 힘들어서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훌륭하거나 끈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어떤 일을 할 때 포기하는 일이 생기면,
아빠가 국토 대장정 중간에 포기하는 것을 보고 은연중에 “나도 포기해도 괜찮지”라는 노파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중간에 우리 아이들이 포기 좀 하면 어떠냐?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다.
그래도 아빠 마음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끝내 완주하게 되었다.
이제 일상으로의 복귀다.
아마도 복귀하면 아이들과 전쟁을 또 벌일 것이다.
그래도 내가 복귀할 곳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오늘의 결산(누적 462.7km)
이동경로: 전남 해남군 동일 모텔 - 땅끝 전망대 - 전남 해남군 땅끝비치
이동거리: 33km
총비용: 102,600원
1)간식: 7,600원(편의점 커피)
2)저녁: 32,500원(보물섬 횟집)
3)기타: 7,500원(기념품/모노레일편도)
4)숙소: 55,000원(땅끝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