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뉴욕
2015년 어느 추운 봄날, 뉴욕을 가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를 좋아하는 여자지만 뉴욕처럼 시끄러운 곳은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JFK공항을 거쳐 버지니아 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예쁜 집이 한채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인의 가정에서 3주 정도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건 없었는데, 해야 할 것도 없었다. 그게 나에게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stop
하고 있던 일을 잠시 스톱했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더 잘 가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잘 가는 것만을 고집했는지 모르겠다. 조금씩만 가보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어보기도 하면 되는데... 그때는 그저 내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더 나아지기보다는 자꾸만 퇴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퇴행은 심리학 용어로 유아기 때의 모습을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더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게 되는지 몰랐었다.
낯선 곳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HOW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이었다.
HOW ARE YOU라는 질문을 좋아한다. 미래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지금을 묻는 질문이라서.
나는 그때 미래가 아닌 지금을 질문했어야 했다.
하지만 자꾸 미래가 보였고, 앞으로가 보였다. 생각할수록 괴롭고 힘들기만 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하루, '뉴욕 갈래?' 같이 있던 지인이 권유했고, 그 말은 나를 흘러가지 않고 남았다.
존경하고, 따르던 목사님이셔서 내게 흘러가지 않는 말을 많이 해주시는 분이었다. 처음 그분이 했던 말은 사역을 하라는 말이었고, 두 번째 그분이 했던 말은 십일조를 선교사에게 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을 지킨다. 모든 사람이 내게 같은 말을 했어도, 그분의 말이 항상 내 마음에 멈추어 있었다.
그분이 하는 세 번째 말이 뉴욕 갈래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다음 날부터 핸드폰으로 뉴욕 여행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뉴욕은 내게 전혀 의미 없었다. 나의 미래와 전혀 상관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뉴욕을 결정하고 나서 나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할지 계획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결정하고 추진하고 계획하는 것이 너무 빠른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미래에 잡아뒀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며칠 뒤 새벽 3시 그레이하운드를 타기 위해 , 한국인은 나밖에 없는 버스정류장에 나는 홀로 서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옆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도 안 들리고, 옆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홀로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연거푸 몇 시간을 잠을 청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당시 핸드폰 충전기가 있는 미국 버스에 놀라며 신문명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인 것처럼 나는 자연스레 뉴욕에 젖어들고 있었다.
아침 8시가 좀 넘어서 뉴욕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나오자마자 너무 추운 뉴욕의 3월을 경험하며. 맥도널드로 향했다. 배가 고팠다.
몸도 추웠다. 뉴욕에서 나를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맥도널드였다. 핫케익 브런치를 시키고 앉아서 게스트 하우스로 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를 처음으로 켰고, (나는 길치와 방향치를 가지고 있다 ) 친구들이 미국 간다고 선물해 준 셀카봉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내가 예약한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메이시스 백화점, 백화점을 들렀다가 유명한 쇼핑몰로 들어갔다. 너무 추운 날씨 덕분에 나는 스카프도 하나 샀고, 얇은 니트도 하나 구입했다. 나의 뉴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대부분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다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출근부터 퇴근까지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어지는 현재는 없고 내일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좋은 질문이 아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