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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TH Jan 09. 2021

그저그런 한국인

자유가 주어지면

두 달 남짓한 미국에서의 시간은 나를 자연스러운 나로 돌아가게끔 했다. 나는 한국에서 꽤 유능한 선교단체 사역자였고,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다. 늘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희생 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을 꿈꿨었고, 내가 꿈꾸는 삶은 분명히 내가 있고, 타인이 있는 삶이었다.


혼자 뉴욕에 도착한 지 24시간이 지나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무엇이든 해도 되는 자유가 주어졌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더라. 생각 없이 씻고 준비하고 그냥 나왔다 어디를 가고 싶었나 적어보기도 했다. 숙소를 다시 찾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오늘 일정은 뉴욕에 왔으니, 자유의 여신상으로 정했다. 출퇴근 페리를 타면 무료로 구경할 수 있다는 블로그의 글이 많았다. 그때처럼 블로그를 많이 검색한 때는 없었다.

나는 늘 누군가와 함께 했었다.

혼자서 무언가를 찾아가거나 구경하거나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주변에 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뭘 해야 하나 계획을 세우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알았다. 나는 내가 있고 타인이 있는 삶을 살지는 않았구나.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은 끄집어 내야 나왔다. 겨우 짠 일정은 자유의 여신상 - 트리니티 교회 - 월스트리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었다. 할 일이 생겼다. 할 일은 나를 이끌어 갔다. 지금껏 나는 내가 계획해서 내 인생을 이끌어간 것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없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에 의지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삶,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었을까

질문은 나를 자라게 한다. 나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던진 질문은 항상 내 안에 남아있다. 남이 해준 말보다 더 깊이 저장되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나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금 더 살다 보면 늘 내가 던진 질문의 답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답은 있다.  '조금 더 살다 보면'


뉴욕의 랜드마크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길은 뉴욕에서 가장 무섭다는 지하철을 타야 했다. 너무 영화를 많이 봤다. 세상 무섭다는 지하철 범죄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가방을 부여잡고, 낯선 이들이 가득한 지하로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나는 또 한 번 느꼈다. 이곳에서 나는 나를 낯선 존재가 아니라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있구나. 늘 내 삶을 붙잡고 있던 열등감은 문화 속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태국이나 홍콩의 지하철을 타면서도 내가 이랬던가. 대만에 가서도 지하철 타기가 무서웠던가. 단순히 총기 사용이 가능한 나라라서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내 안의 열등감이 나를 사로잡아 버리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야만 했다.                                                      

나는 열등감 가득한 그저 그런 한국인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를 경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의 행동과 나의 느낌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열등감 가득한 그저 그런 한국인은 지갑과 핸드폰을 움켜쥐고 지하철을 탔고, 와이파이가 안 되는 지하철역 안에서 GPS만 붙들고 있었다.  어두운 지하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 그저 그런 한국인은 이성을 되찾았고,  목적지의 이름을 발견했다.                                          


스테이튼 섬 가는 지하철









Ferries to Staten Island   

배터리 파크에 도착하자마자 두려움에서 호기심과 설렘으로, 열등감 가득한 그저 그런 한국인에서 기대감 가득한 여행객으로 바로 변신한 나는 몇 분 만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스테이튼 섬을 향해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틈에 끼어 아주 잠시 뉴욕의 직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f




스테이튼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면 멀리서나마 자유의 여신상을 공짜로 볼 수 있다. 어차피 여신상에 내려서 구경할 생각이 없는 혼영객이라면 저렴하게 자유의 여신상을 관광할 수 있다.                               


                    




잠시나마 뉴욕의 직장인 인척 바쁜 척 페리를 향해 뛰어갔고, 자리도 넉넉해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모두가 공감하다시피 관광지의 웅장함은 들을 때 TV에서 볼 때가 더 설레고 아름답다. 직접 본 자유의 여신상은 마치 바다 한 중앙에 손을 들고 서서 누구든 옆에만 와달라고 절절하게 매달리는 외로운 여인과도 같았다.          

       









관광 패키지여행을 하면 저기에 내려서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혼자 가서 사진 찍어줄  사람도 없고 해서 나는 배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한없이 쳐다보는 것으로 뉴욕의 랜드마크에 눈도장을 찍었다.                  



내가 상상한 자유의 여신상은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듯이 그곳에 서서 그녀를 보러 온 이들을 군림하는 모습이었는데 생각보다 저 여인은 사람들을 강하게 군림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 아니었다. 되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절절함이 넘쳐나는 연약함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생각 이상으로 이 여인에게 관심이 갔다.  뉴욕은 들은 것과 참 다른 곳이다.


출퇴근 페리의 단점은 바로 다시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스테이튼 섬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페리에 다시 올라타야 공짜로 다시 지하철역까지 갈 수 있다. 나는 잽싸게 다시 자리를 잡았고, 나를 실어주는 페리에 조금 더 익숙하게 올라탔다. 해야  할 일에 따라 나를 이끌어 아침 플랜을 성취하고 난 나는 뿌듯함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 음 발걸음을 옮겼다. 트리니티 교회는 조금만 걸어가면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의 한가운데 가장 보고 싶었던 한 가지는 트리니티 교회였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인데 월스트리트 한가운데에 부를 상징하는 황소와 가까운 곳에 함께 있다고 했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월스트리트에서 미국 아니 세계 경제가 결정되는데 그 근처에 바로 역사적인 교회가 함께 있다니...                                          

신앙인인 나는 부를 가진 사람도, 또 다른 부를 가진 신을 함께 보았다. 월스트리트는 비단 돈만이 우뚝 서있는 곳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그곳에서는 최고 같아 보였다.   그곳이 월스트리트였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최고였을까  



질문은 나를 자라게 한다. 나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던진 질문은 항상 내 안에 남아있다. 남이 해준 말보다 더 깊이 저장되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나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금 더 살다 보면 늘 내가 던진 질문의 답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답은 있다.  '조금 더 살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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