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이 알려준나
뉴욕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메릴랜드로 돌아온 나는 3주간의 그곳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짐을 쌌다. 다음 행선지는 시애틀이었다. 시애틀에 아는 대학 동기 언니가 나를 초대했다. 일행도 있었고, 존경하는 목사님도 계셔서 나는 방향을 틀었다. 언니는 나를 위해 미국 국내선을 끊어주었고, 보스턴을 거쳐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무섭지도 않았다. 다음 일정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마음속 한편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고민도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비행기 한편의 와이파이 주소와 비밀번호였다. 미국 국내선 비행기는 와이파이가 된다. 바로 연결하고 비행기가 뜨자마자 카카오톡을 열었다. 메릴랜드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내가 가자마자 비가 그쳤다. 카카오톡을 열어 출발했다고 문자 하니 여기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고 시애틀에서 연락이 온다.
보스턴에서 5시간을 대기하고 나서 다시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비와 함께 시애틀 공항에 도착하니 처음 보는 언니의 남편이 나를 반겨준다. 약간의 어색함과 기대함을 함께 가지고 벨뷰에 있는 언니의 집으로 향했다. 시애틀은 나에게 어떤 곳이 될까. 아는 거라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밖에 없이 시애틀로 향했다.
나는 예쁜 집에 도착했고, 하늘은 더 예뻤다.
비는 그쳤고, 내 마음의 근심도 그친 것만 같았다.
좀 외곽에 위치했던 미국 동부의 집과는 다르게 이곳 벨뷰는 주택가였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동네처럼 보였다. 어두운 밤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내가 지낼 1층을 소개받았다. 늘 언니에게만 듣던 언니 남편은 언니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행복해 보여서 나도 행복했다. 새벽에 도착한 나는 아침에 일어나 잠시 산책으로 동네를 둘러보았는데, 혼자 나갈 수 있는 것에 자유를 느꼈다.
한국이 왜 나의 나라인지 알겠다. 나의 나라, 나의 집, 나의 직장에서 나는 자유로운 것이다.
첫날 일정은 언니의 아가들을 위한 어린이집 체험이었다. 나를 처음 본 귀요미는 아직 이모 발음이 안되어 이 미라고 나를 불렀다.
아이들의 세상은 복잡하지 않아서 참 좋다.
한국인 엄마 아빠의 아가는 미국인 아빠, 베트남 엄마에게서 태어난 다른 아가와 같은 언어를 말하고, 같은 생각을 한다. 문화라는 것은 같은 언어, 같은 생각, 같은 꿈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편견도 선입견도 없이 서로 어울려 노는 아가들의 세상은 아마도 어른들이 평생 꿈꾸어도 가지 못하는 세상일 것이다.
한국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동부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영어로 대화하는 청소년들 틈에서 9살짜리 꼬맹이와 내가 영어 수준이 맞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인정해야 했었는데... 한국어로 아이들이랑 떠들어 대다 보니, 벨뷰도 적응이 되었다.
처음 시애틀 시내를 나가던 날, 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그곳에서는 차를 타고 달리면 달릴수록 하늘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 운전연수를 늦게 받았을까... 지금도 하늘 보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직도 거기서 본 하늘을 다시 본 기억이 없다.
가는 곳마다 저렇게 구름이 걸려있었다. 꼭 내가 더 열심히 가면 갈 수 있을 것 같이, 손을 뻗으면 붙잡힐 것 같이... 너무 높은 곳에 있지도 않고, 너무 낮은 곳에 있지도 않아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내가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좋았나 보다.
비를 몰고 시애틀로 온 나는 하늘에 반해서 그곳에 머물렀다.
그때까지 나는 나를 잘 몰랐다. 붙잡고 싶은 하늘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을.
가끔 나도 나 자신을 모른다. 기분이 안 좋은데 기분이 안 좋은 건지 모른다. 이유는 더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딱 맞는 위로를 던지만, 내가 기분이 별로 였구나 느낀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감정에 둔한 편이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알아야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아무리 달려도 하늘에 닿지 못하는 나를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