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콜롬보
두 번째 만난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는 뜨거웠다.
온만큼 비행기를 더 타고나서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고 우리는 숙소를 내어주실 한 분을 만나기 위해 공항을 관찰하고 있었다. 콜롬보는 치안이 괜찮은 편이다 인도나 파키스탄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짝 긴장했고, 보호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같이 눈에 불을 켜고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콜롬보에 갔을 때 나는 불안이 가득했다. 선교단체에서 7년을 일하고 나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1년을 쉬기로 결정했었고 바로 직전에 학생들을 데리고 콜롬보 선교를 떠났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대학생들과 3명의 사역자들이 함께 콜롬보 땅에 도착했을 때 나는 땅의 어떠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보호자로 어딘가에 간다는 것은 그렇다. 나는 평생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어느 곳에 가든 보호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나도 보호가 필요한 존재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무시했다. 내 인생의 전반부는 아마 역할로 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진짜 보호자가 될 수가 없었다.
보호자의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핑계 아래 떠났던 선교 여행에서 나는 내가 보호자가 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다. 내가 보호하는 사람들과 나는 다르지 않음을 증명받았다. 나는 한 번도 나를 위해 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다. 어떤 역할을 가지고 함께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내게 필요한 어떤 것보다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나는 몰랐었다.
두 번째 스리랑카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나의 휴가를 사용했고,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나를 위한 여행이었다. 나는 보호자든 상담가든 어떤 역할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나는 나를 데리고 갔다.
그 땅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했다.
그곳은 나를 격하게 환영해 줬고, 첫발을 그 도시에 내디뎠을 때 나는 나를 위해 준비된 도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언어도 문화도 얼굴색도 다른 이곳에서 나는 나를 좋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자마자 뜨거운 콜롬보를 경험하고 핸드폰 왼쪽 위에 새로운 스리랑카의 통신사를 새겨 넣은 후, 잠이 들었다, 아니 잠을 청했다. 밤에도 콜롬보의 더위는 식지 않는다 잠을 잤는지 더위에 지쳤는지 괴로운 밤이 지났다
기상후 바로 콜롬보 관광에 나섰다.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고, 캔디 &누 워러 엘리야 일정도 있었기에 6박 7일 중에 쉬어야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직장인의 휴가란 한여름밤의 꿈이면서도, 매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업무의 공백이기도 하다. 나는 휴가를 갈 때마다 학교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로밍으로... 별거도 아닌데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용건을 전하는 나쁜 사람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한다 이날 저녁에도 나는 메일 확인으로 그 사람들을 또 한 번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휴가를 즐기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평소에 더위를 많이 탄다고 생각지 않았던 내가, 쉬지 않고 땀을 흘렸다. 그곳에서 조금만 걸으면 땀이 비 오듯 흘렀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돌아다니려면 적어도 핸디 선풍기를 머리에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항상 9시에 관광을 시작했고, 11시 30분 전에 식당에 들어가야만 더위를 견딜 수 있었다.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여기에서 만큼은. 더위를 별로 안 탄다고 한국에서 큰소리치고 다녔던 나는 여행의 후반부로 가면서 인정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너무 덥다. 운동 직후처럼 땀이 쏟아져 내린다
나의 여행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더위와 불안과 업무는 나를 지치게 했지만, 아직 나는 다 지치지 않았다. 나는 아니 우리는 아직까지 에너자이저였다
아직 나는 다 지치지는 않았다. 나는 아니 우리는 아직까지 에너자이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