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웠다. 변기통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동그란 구멍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우웨에엑.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물감들. 역한 냄새가 났다. 취기가 있어서 힘든 거라고 생각했다. 숙취 약을 마셨지만, 그 약까지 모조리 다시 토해냈다.
조퇴서를 내고 겨우 집까지 걸어왔다. 세수를 하려고 허리를 굽혔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았다. 피부를 답답하게 하는 땀과 뒤엉킨 화장품보다 속을 답답하고 역하게 만드는 물질을 지우고 싶다. 이내 곧또 뱃속에서 뭔가가 역류해 올라온다. 갈색 물. 자꾸 갈색 물을 토해내다보니 좁은 화장실 칸막이 안에 역한 냄새가 더 짙어졌다. 병실에서 나는 바로 그 냄새였다. 장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알코올성 위염 같아요.”
알코올성 위염? 처음이었다. 난 아직 20대인데. 의사가 포도당 수액을 맞아야 한단다. 몇 시간 걸리느냐고 물어보니 3시간은 맞아야 한단다. 얼른 알코올을 분해해야 한다고. 몸이 더 이상 술을 받아내지 못한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미처 몰랐다. 간호사가 안내해주는 침대로 갔다. 편하다. 포도당 수액 색깔은 노란색이었다. 포도당 수액을 가득 담은 봉지는 땡땡하게 부풀어 있었다.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곳엔 나뿐이다. 벌써 6월. 일 년의 반이 지났다.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았다. 독하게, 포기하지 않으니까 되긴 했다. 그토록 꿈꿔온 회사에 들어왔다는 게 그 증거였다. 이제 더 이상 괴로울 일은 없어야 했다. 이겼으니까. 그런데 변수는 다른 데서 찾아왔다. 술. 아무리 친목의 꽃이 술이라지만,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데 꼭 술이 있어야 할까. 사실 거의 매일 밤 같은 사람들과 술 마셔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취기 덕으로 끈끈한 정이 잠깐 반짝하더라도 다음 날이면 곧 느슨해지는 게 다반사였다.
이상하게도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모양만 바뀔 뿐. 즐기는 자 이기는 사람 없다지만, 매 순간 즐겨야 하는 건 고역이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도 항상 즐기기는 어렵다. 하물며 지금 나를 괴롭히는 어제의 술자리는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모나지 않기 위해서였다. 거절하면 괜히 불편해질까 봐. "즐기는 자가 결국 이긴다"라는 말은 버티게 하기 위해 만든 말일 것이다. 즐기든 즐기지 않든 그저 버텨내기만 하면 된다. 사실 버텨낼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하루를 살 수 있으니.
저 섬과 네가 다를 것이 없다.
다시 뱃속이 꿈틀거렸다. 간호사를 불러야 한다. 급하게 호출 벨을 찾아 눌렀다. 몇 초가 지났을까. 이미 늦었다. 갈색 물은 또 입속에 고였고, 곧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아까보다 더 심한 냄새가 났다. 환자의 냄새. 그제야 도착한 간호사는 토해진 내 위액을 보고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휴지를 한 움큼 쥐어 내게 건넸다.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대충 닦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한결 속이 편해졌다. 버티는 삶이 언제쯤 낯설지 않고 자연스러워질까. 어쩌면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변하는 것이 없어야 하니까. 하지만 삶은 매 순간 내 예상을 조금씩 뒤틀고 새로운 변수를 만들 준비를 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바라는 마음도 무뎌지지 않을까. 낯선 변수를 만나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여기는 능력을 갖는 게 진짜 이기는 일일 테다. 그건 시간이 해결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