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혜인 Jul 27. 2018

결혼, 축하해

큰 벽을 넘어 간 너


들어온다.

네가 밝게 웃는다.

그리고 울리는 피아노 선율.

네가 바라보는 곳에는 한 남자가 환한 미소로 너를 바라보고 있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는 너,

그리고 너의 발길을 좇는 나.


주례가 뭐라고 읊조린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이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어느덧 사랑의 서약을 마치고 이제 반지를 교환할 때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너는 낑낑대며 남편에게 반지를 끼웠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데도 너는 사람들을 웃길 줄 알았다. 군데군데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네가 결혼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순백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네가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게 더 놀라웠다. 누구보다 화사하고 단아한 신부였지만, 내가 알던 끼 많은 네 모습은 그대로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변한다는 말은 순 거짓말이다. 아무리 상황이 진중한들 너의 본성이 어디로 가리오. 정말 네가 변했다면 지금 네가 주변에 풍기는 이 기운도 달라야 했다. 남편에게 반지를 무사히 끼운 네가 하객 쪽으로 돌았다. 그 순간 너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 반달 모양 눈을 그리며 네가 웃는다. 예뻤다. 지금껏 내가 본 네 모습 중 가장 예뻤다. 네 옆에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네 남편이 듬직해 보였다. 좋은 남자 만났구나. 그가 내민 손을 네가 잡는다.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하객들이 박수를 치며 네가 한 발짝씩 걸음을 뗄 때마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다.




너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처음 대학교 교실에 들어갔을 때 너는 혼자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연히 네 옆에 앉게 된 나는 네가 일본인이라는 게 신기했고 또 반가웠었다. 한창 일본 드라마를 즐겨보던 때라 네게 알고 있는 일본어를 죄다 읊어댔다. 아주 기초적인 일본어임에도 너는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들어주었고,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친해졌었다. 하지만 교환학생이었던 너와 함께였던 시간은 너무 짧았다. 공항에서 울면서 헤어지며 우리는 매년 서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만나자고 했다.


빈말로 지나갈 줄 알았던 그 말은 거짓말처럼 매년 지켜져 왔었다. 그래도 거리가 거리인지라 너를 가까이서 본 건 채 열 번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네가 한국에 왔던 게 작년이었다. 올해도 여느 때처럼 네가 한국으로 놀러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 임신했어. 그래서 앞으로 한국에 자주 가지 못할 거 같아."


네가 청첩장을 보내며 내게 건넨 말이었다. 그러니 식장에서 같이 사진 많이 찍자고.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가 알고 지낸지도 벌써 8년이었다. 고작 몇 번 오갔을 뿐인데 우리가 만난 순간보다 더한 시간이 지났고 네가 결혼했다. 낯설었다. 결혼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네가 결혼이라니.


변한 것은 없었다. 우리 사이도, 너도, 나도. 예전 그대다. 다만 그동안 시간이 변했고, 기억이 늘어났으며, 각자가 속한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뿐. 그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그 환경 밖의 것들이 낯설어진다. 그 골이 더 깊어질 건 앞으로 너와 내가 중시하고 궁금해하는 지점의 괴리감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결혼한 너와 여전히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나. 우리 사이에 겹칠 궁금증과 고민, 행복의 교집합은 얼마나 있을까. 박수소리는 끝없이 계속 이어졌다. 네가 점점 멀어져 간다. 그제야 눈앞이 조금씩 뿌예진다. 먼발치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어느 때보다도 밝게 웃고 있는 너는, 오늘 참 예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