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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혜인 Nov 08. 2018

하고 싶은 게 너무 뚜렷했어

행복의 다른 이름


살면서 들은 말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부모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좋은 부모 밑에서는 참 많은 일이 고마워야 했다. 선택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행여나 그 선택이나 생각이,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춘다면 그건 내 잘못된 판단 때문일 터였으니까.


유학도 그랬다. 몇 날 며칠이고 지독하게 향수를 앓았고 끊임없이 한국이 그리웠었다. 갓 20살 된 친구들이 새터를 다녀왔다고 했다. “새터? 그게 뭐야?” “입학 전에 가는 오티 같은 거. 선배랑 동기들이랑 다 같이 가서 술 먹겠지 뭐.” “와, 그럼 캠프 같은 거네? 진짜 재밌겠다....”




새터. 이곳에 그런 건 없었다. 그저 한적하고 조용한, 사람 없는 곳. 유유자적하게 살기 좋은 곳. 가족 지향적이라서 여가 시간은 가족과 보내는 게 당연한 곳. 혈기 왕성하고, 하고 싶은 게 많고, 가족도 없는 내게는 그저 외로운 곳일 뿐이다.


'새터'라는 개념을 알 만한 한국 사람들은 여기에 몇 없다. 다들 나보다 6~10살 정도 선배다. 그들은 늦은 나이에 유학 왔다며 죽치고 앉아서 공부만 한다. 하나같이 대학 별 거 없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일찍 유학 온 게 낫다고 했다. 갓 대학생으로서 대학 생활의 꿈에 함께 부풀 수 있는 또래 친구들은 이곳에 없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 연애를 시작했다. 나 수업이 끝나면 방에 틀어박혀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 감정을 느끼는 시간을 보낸다. 원치 않았지만 본연의 삶의 궤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내 앞 차는, 그 앞 차는, 그 앞....


한국에 있었다고 해서 후회 없이 살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힘들다고,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징징대는 게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게워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유학이 싫었어. 왜냐면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조언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아니 어쩌면 굳이 유학이 필요 없는 길을 꿈꾸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게다가 졸업이 늦어지면 기약된 미래도 없이 돌아갈 날만 늦어질 것 같았어. 참 못났지? 남들은 가고 싶어 안달인데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 그래. 난 유학 중인 것보다 '유학이 싫다'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더 싫었어.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 머릿속 시간은 과거로 흘렀다.


네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잖아. 아니 정확히, 수능을 못 쳤으니 그렇지.



불행은 어쩌면 행복의 또다른 이름일지도.


한국 대학교를 가지 못한 나를 자책하면, 다들 그랬다. 좀 더 넓게 생각하라고. 레드오션인 그곳이 꼭 한 가지 길로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아닐 거라고. 아니면 다른 분야도 접해보라고 했다. 마음이 콩밭에 있는데 팥밭에 머무는 건 쉽지 않았다. 매일 꿈을 꾸었다. 작가 수업을 들었고, 엠티도 갔다. 남자 친구도 있었고, 각종 자격증도 땄다. 이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추억을 쌓고 싶었고, 취업 준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익숙한 그 소망을 실현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뚜렷해서 불행했던 건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행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고 싶고, 꿈꿔왔던 건 해 보지 못한 채 청춘이 흘러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힘들게 했다. 원치 않는 유학을 하게 된 이 순간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은 쉴 틈 없이 괴롭게 했다. 매일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항상 웃었다. 분명 좋아야 하는데 좋지가 않은 일, 그런데 좋은 척해야 하는 일은 실로 좋은 일일까. 느끼지 못하는 '좋은' 순간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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